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과제 점검 회의’에서 “우리가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적인 것이며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라며 “개혁이란 것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고 의지를 보였습니다.“연금 개혁은 미래세대의 일할 의욕을 고취하고, 노동 개혁은 미래세대가 역량을 발휘할 양질의 일자리 지속 공급을 위한 것이며, 교육 개혁은 미래세대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3대 개혁의 전략적 목표도 제시했습니다. 개혁은 ‘꼭 해야 하는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검찰개혁·언론개혁이나 노무현 정부의 ‘4대(국가보안법·과거사법·사학법·언론법) 개혁 입법’ 혹은 재벌개혁처럼 진영 간 정쟁의 대상이 되는 개혁도 있지만 연금·노동·교육 개혁이나 국방개혁·정치개혁처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있는 개혁도 있습니다. 꼭 해야 하는 좋은 일이라고 해도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개혁 대상이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을 ‘개혁 주체’로 생각하지 ‘개혁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혁신’이고 상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득권’이지만 누구나 대개 상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카알라일의 통찰대로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려운가 봅니다. 국회는 늘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정치 개혁의 전략적 목표는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언제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거죠”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목표는 대통령의 권력을 어떻게 분산시키느냐에 맞춰져 있습니다. 정말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적일까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정희·전두환 두 대통령은 말 그대로 ‘제왕’의 권력을 누렸습니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세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누렸습니다. 무소불위의 제왕은 아니었지만 여당 대표를 임명하고, 공천권으로 당을 장악했으니까요. 노무현 대통령의 당·청 분리 이후 여당 대표도 선거로 뽑기 시작하고, ‘상향식 공천’을 명분으로 경선 제도가 보편화되면서 대통령의 당 장악은 현저히 약해졌습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윤석열 대통령을 거치면서 대통령 권력은 점점 약해져 지금은 고위공무원 인사권 정도만 남았습니다. 제 생각에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 ‘비토크라시(vetocracy)’입니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하려는 것을 비토할 수 있을 뿐입니다. 누구도 주도할 힘이 없습니다. 개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 이중 권력이 어긋날 때, 어떤 상황이 되는지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 개혁의 전략적 목표는 ‘비토크라시’ 극복이 돼야 합니다. 제가 갖는 의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수많은 정치 개혁으로 한국 정치가 좋아졌냐는 겁니다. 제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개혁을 할수록 정치가 나빠졌다는 생각은 지나친 걸까요?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 여당 대표는 대통령이 임명했습니다. 공천도 청와대가 좌지우지 했습니다. 합법·불법 가리지 않고 천문학적 정치 자금도 만들었습니다. 모든 게 정치 개혁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1990년대 정치는 제 역할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많은 개혁을 했습니다. 당·청 분리로 당 대표를 선거로 뽑기 시작했습니다. 책임당원(국민의힘)·권리당원(민주당)으로 불리는 진성 당원제를 도입했습니다.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했습니다. 지구당을 폐지했습니다.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혁도 했습니다. 청문회 대상도 확대했습니다. 중앙당 당직자 수를 제한하는 정당 개혁도 했습니다. 국회 선진화법도 만들었습니다. 1인 2표로 후보와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제 개혁도 했습니다.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개혁이 있었습니다. 개혁의 결과 지금 정치가 더 좋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1990년대 정치가 제 역할을 더 잘했다고 봅니다. 다만 정치 개혁 때문에 정치가 나빠진 것인지, 다른 이유로 나빠진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특히 ‘진성당원제’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습니다. 개혁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개혁 참 어렵습니다.박성민 대표 (정치컨설팅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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