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연말 행사에 참석했다가 같은 테이블에 배정된 의료진 한 분을 만났다. 마침 같은 분야에 서로 아는 지인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분이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여 약물 처방을 한 이유로 의료 자격증 박탈은 물론 형사 처벌까지 받게 되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친절한 눈빛과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하던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퍼듀파마라는 제약회사와 그들이 개발한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으로 인한 오피오이드 사태에 대한 보도가 언론에서 자주 보인다. 베스 메이시라는 기자가 수년간 이 사태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쓴 '도프식(Dopesick)'이라는 제목의 책과 이를 원작으로 각색한 동명의 드라마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약물 중독의 해악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비극으로 치닫는 피해자들의 스토리, 퍼듀파마의 악랄한 사업 전략, 그리고 그들에게 법적 책임을 부과하기 위한 변호인의 투쟁을 보여준다. 지인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뉴스의 주요 헤드라인으로 보던 사건이 현실로 와 닿았다.퍼듀파마의 소유주는 색클러 가문이다. 의사이자 회장인 리처드 색클러의 지시 하에 퍼듀파마는 옥시콘틴의 중독성과 남용 위험을 축소하고 약물 실험 결과를 조작하여 위험성을 축소시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거행했다. 결과적으로 과잉 처방과 악용을 부추겼고, 고통 치료를 위해 합법적인 처방을 받은 환자를 포함하여 50만 명의 사망자가 생기는 비극을 초래했다. 미국 대부분의 주는 소송을 걸었고 회사는 지난해 말 파산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가 방패막이 되어 색클러 가문은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는 비판이 일었고, 올해 초에 합의한 내용이 통과된다면 60억 달러(약 84조 원)를 벌금으로 내는 대신 형사 처벌을 면하게 되는 상황이다. 색클러 가문이 개인적인 법적 책임으로부터 보호된다는 합의문을 승인한 파산 법원의 권한에 대한 항소 법원의 판결이 남은 상태이다. 또 다른 당사자인 여러 대형 약국과 유통 업체, 제조 업체가 정부와 잠정적인 합의를 최근에 발표하면서 몇 년간 진행된 소송은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펜타닐 남용이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될까 우려스럽다.이 스토리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법조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려 힘든 싸움을 택한 개개인의 노력이다. 법률은 끊임없는 개혁이 필요한 시스템이다. 필요한 변화를 막는 것은 개인의 욕심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개인의 용기이다. 인간은 늘 두 길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한다. 이익을 취할 것인가, 고통스럽지만 선을 취할 것인가. 현실에 좌절하고 시니시즘에 빠질 것인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갈등 안에서도 권력과 힘을 우선시하며 타인을 고통에 몰아넣는 사람도 있고,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통해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2023년에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크게, 더 널리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감사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이소은 외국변호사(미국)/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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