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 20.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취임 선서를 주재했는데, 대법원장이 “I, Barack Hussein Obama, do solemnly swear”라는 첫 단락을 마치기 전에 오바마가 말을 시작하여 대법원장의 말을 끊는 모양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어색함을 뒤로 하고 대법원장이 이어가는데, 이번엔 그가 “I will execute the office of President to the United States faithfully”라고 하여 그답지 않은 실수를 합니다(미국 헌법에는 “I will faithfully execute the office of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오바마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스치지만, 그는 대법원장의 ‘어순 실수’ 그대로 “I will execute … faithfully”라고 선서했습니다.오바마의 선서는 헌법 규정의 어순에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논란이 일자 로버츠 대법원장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두 사람은 다음날 다시 선서를 했습니다. 뭐 그리 대수냐 싶지만, 논란의 배경으로 보수 우위라는 평가를 받는 로버츠 대법원과 변화와 개혁을 표방한 오바마 행정부의 잠재적인 갈등이 꼽혔다고 합니다.로버츠 대법원장은 판시 범위를 사건 해결에 필요 최소한으로 좁혀서 선례와 정면충돌을 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평가가 있고, 실제로 로버츠 대법원은 2010년 기존 선례와 관계가 문제 된 일련의 사건들에서 보수적 성향의 판결을 5:4의 근소한 우위로 선고합니다. 이에 대해 브라이어 대법관은 “It is not often in the law, so few have so quickly changed so much.”라고 밝혔습니다.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한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하자 로버츠 대법원장은 “우리에게는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없다”는 유명한 논평을 남깁니다.오바마와 로버츠의 어색한 선서는 그저 해프닝으로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멀리건’을 썼다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다시 선서를 한 것은 그만큼 사법부와 정치권력의 관계가 조심스럽게 다룰 문제이기 때문은 아닐까요?미국 연방대법원장과 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선거에 의해 정치권력이 교체되더라도 대법원의 구성은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우리의 경우 대법원장, 대법관에게 6년의 임기만을 허여하고 있어서 선거에 의한 정치권력의 재편이 최고법원의 구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제청권을 부여하고 정치권력도 이를 존중하는 관행을 통하여 사법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독립된 지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사법부와 정치권력 사이의 이러한 미묘한 균형점에 변화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선거와 최고법원 구성원의 인선과 같이 사법부와 정치권력의 관계에 변수가 될 만한 일들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법부의 기능과 독립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온전히 유지되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사법부도 헌법이 부여한 본연의 책임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민성철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 이 칼럼의 작성 과정에서 Jeffrey Toobin의 “The Oath: The Obama White House and The Supreme Court”(2013)를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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