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신문

목요일언

메뉴
검색
교통사고
목요일언

나의 조국(祖國)

2022_thursday_yoon_face.jpg2022_thursday_yoon.jpg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제2곡 ‘몰다우(블타바)’를 듣고 있다. 내내 서사적이고 중후할 것 같은 표제의 곡이 어쩜 이리 서정적이고 풍경화 같을까? 햇살과 강물이 어우러지는 느낌의 도입부, 사운드와 템포를 쥐락펴락하는 전개부 모두 미려(美麗)하지만, 특히 임팩트 있는 피날레는 숨 멎는 감동이다.

“나의 조국” 하면 인상 깊게 생각나는 분이 있다. 전 주한키르기스스탄 대사이다. 어느 해 여름휴가 때, 키르기스스탄 보콘바예바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부부가 친절하게 친구 집을 추천해주고 차로 안내해주었다. 며칠 잘 머물렀다. 귀국한 후 감사 메일을 보냈다. 부부는 두 분 다 외교관(당시 남편은 주일 대사)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그해 연말에, 뜻밖의 메일이 도착했다. 부인의 메일이었다. “내가 주한 대사로 임명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세상은 참 좁지 않은가?

대사는 상대국의 사전 동의, 즉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그레망(agrement)을 받아야 공식적으로 임명된다. 대사는 자국 홍보에 진심을 담았고,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열심히 배웠으며, 한류에 대한 관심도 열렬했다. 올해 초 본국 외교부 차관으로 영전하여 떠났다. 4, 5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외교관 업무에 강력한 무기이겠지만, 모스크바 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여 한국의 법제도에 대한 안목도 높은 것 같았다. 학구적인 만큼 모든 업무가 치밀할 것 같다고 내가 말하자, 대사는 눈을 반짝 뜨면서 진지하게 등 뒤를 가리켰다.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죠. 내 등 뒤에는 나의 조국, 키르기스스탄이 있으니까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의연함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휴가를 내서 한국을 방문한 남편과 그의 부친도 만났다. 본국에서 근무하는 부군은 물론이고, 키르기스스탄의 저명한 국민음악가인 시아버지 또한 애국심과 자부심이 대단하셨다.

인생이 쓰라릴 때 그 울림이 더욱 절절하다. 주권 국가의 국민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어떠한 비극인지, 그리고 그 끝이 얼마나 처참한지 홀로코스트(holocaust) 영화나 난민(refugee) 재판에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라는 존재를 물이나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고 사는 건 아닐까? 출입국 시 당당하게 여권을 제시할 수 있고, 여권에 스탬프가 “쾅” 하고 찍힐 때(요즘 전자여권에는 스탬프가 찍히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실존적으로 깨닫게 된다.

새해에는 사계절 아름다운, 내 조국 산하(山河)를 자주 찾아 즐기고 싶다. ‘센 강변 거닐기’도 여전히 위시 리스트에 담겨 있지만…. 문득 생각나는 시 하나. “길 위에 서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내 삶이 닿고 싶은 곳에서/ 황홀한 긍정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윤상철 이사장 (성년후견지원본부)

한 주간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