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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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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으로 외국인노동자 인권 문제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인노동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E9 비자(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 수가 매년 늘고 있고, 고용노동부는 계속 쿼터를 늘리고 있다. 가난한 외국인들이 요청해서가 아니다. 내국인 구인난을 겪는 우리의 기업과 농어촌을 위해서이다. 카타르의 경우와 우리나라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노동자 또는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이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둔감하다. 왜일까.

개인적으로는 선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이 걸리면 양보나 타협 없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집단 이기성은 가족, 직장, 지역, 국가라는 크고 작은 여러 집단에 속해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기독교 윤리학자인 니부어(Reinhold Niebuhr)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의 이타심과 희생정신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넘어서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그래서 집단의 이익 앞에서는 집단 이기심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집단의 도덕성은 개인적 차원의 도덕성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도 우리나라의 경제적 이익을 먼저 떠올리며 집단적 이기심에 빠져 그들에 대한 도덕감이 낮아져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하나는, 불법체류자라는 잘못된 선입견과 불법이라는 용어가 가진 부정적 함의 때문일지 모른다. ‘이주노동자’ 개념에는 고용 비자를 받고 적법하게 체류하는 외국인노동자 외에 미등록 외국인노동자도 포함된다. 미등록자는 고용되어 일을 하더라도 어쨌든 단속 대상인 불법체류자로 분류된다. 그래서 체류자격을 불문하고 이주노동자 집단 전체에 대해 경계심이 드리워지게 된 것은 아닌지.

‘세계 시민성’이 강조되고 있다. 기후변화, 핵 위협, 세계질서 재편, 민주주의의 위기 등으로 국경을 넘어 서로 간 연대가 요청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시민이라는 것도 결국 자국의 안전과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관심과 연대를 외치는 또 다른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할 수 있다. 1990년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of the Rights of All Migrant Workers and Members of their Families)’이 유엔 협약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49개의 비준국은 거의 다 ‘인력 송출국’이고.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이익을 얻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은 위 협약에 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진정한 연대가 가능한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정인경 선임헌법연구관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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