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구호를 내건 적이 있다. 당시에도 그 말을 듣는 순간 선동임을 감지하고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국민이 대통령이 될 수 없고 또 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한동안 이 말이 우리 사회에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를 짚어보자. 뭔가 국민의 뜻이 반영되어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는 뜻이 담겼다고 본다면 그런대로 현실적인 의미도 담긴다고 볼 수 있다. 또 오랜 세월 권력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해온 국민들을 추켜세워 주려는 선의 또한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국민이 어떻게 다 대통령이 될 수 있나? 그럴 수 없음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 실패로 확인되었다. 또 국민이 왜 다 대통령이 되어야 하나? 국민은 생업에 열중하면 된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손흥민이 월드컵에서 축구선수로서 최선을 다하듯이 말이다.
그런데도 이 말이 당시에 먹혀든 까닭은 우리에게 다소 주술적이며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대통령이란 모든 힘과 가치를 다 지배할 수 있는 고귀한 자리임을 자락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을 거쳐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렀다. 그 20년 사이에 우리는 이런 전 근대적이고 낡아빠진 권력 만능주의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냉정하게 짚어보면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전 근대적인 시각은 그사이에 더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었지 해소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온 것 같지 않다.
이명박의 실패, 박근혜의 실패, 문재인의 실패에는 하나같이 이런 전 근대적 대통령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여야도 좌우도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친형에 의해 인사가 좌우되었다. ‘만사형통’, 모든 일은 형을 통해야 한다는 비아냥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미 최태민 목사 문제가 불거졌고 이를 가벼이 여기다가 결국 그의 딸인 최순실 사태로 이어지는 불행을 당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극성 지지자의 포로가 되어 편 가르기 정책을 펴다가 결국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행태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 전직 대통령들이 보여준 전 근대적 행태를 관통하는 한 가지는 다름 아닌 ‘오만’이다.
취임할 때는 소리높여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외쳤지만 이들이 바로 다음 날부터 보여준 것은 대통령은 국민과 전혀 다르다는 행태였다. 일반 국민이 할 수 없는 것을 대통령은 얼마든지 했으며 일반 국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을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은 버젓이 저질렀다. 이명박이 그랬고 박근혜가 그랬고 탄핵을 발판으로 집권한 문재인도 다르지 않았다. 내 개인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은 바로 문재인이 임명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권은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 힘으로 넘어왔다. 실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 한 사람보다 정권이 바뀐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등장한 지 6개월째다. 다른 정권 같았으면 지난 6개월은 허니문 기간이어야 하는데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정권을 빼앗긴 한 때문인지 단 하루의 허니문도 인정하지 않았고 여야의 대립은 나아질 기미가 없는 상황이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데 조금도 실감할 수가 없어서인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철 지난 말이 새삼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이런 게 무례다.
그렇더라도 앞으로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가 아니라 ‘대통령도 국민입니다’라는 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남은 기간 정치를 해간다면 국민들이 지지를 거둬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한우 교장(논어등반학교)
※ 본 칼럼은 필자의 의견이며 법률신문의 논조와는 관계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