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친께서는 2007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시골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와서 상업학교를 나오고 평생을 평범한 은행원으로 6명의 자녀를 키워내신 모범 가장이셨다. 나는 6남매 중 막내였는데, 부친께서는 막내인 나와 맨 끝 손자인 나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좀 각별했었던 것 같다.부친께서 돌아가시기 약 1년 전에 “내가 막내인 네게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대신 막내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주는 선물로 약간의 돈을 줄 테니 네가 전해주기 바란다”고 하시며 세상의 기준으로 큰돈은 아니지만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돈을 주셨다(사실 나는 중학교까지만 부모님께 학비를 받았고 운 좋게 고등학교부터 유학까지 모두 장학금과 내가 틈틈이 번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했다).그때 3살이었던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뜻깊은 선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한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아주 작은 아파트라도 부동산을 취득하기엔 너무 적은 금액이고 은행에 넣어두기엔 이자가 너무 적고- 결국 와인에 투자하기로 하였다. 다른 투자라면 몰라도 좋은 와인을 사두면 절대로 손해는 안 볼 것 같은 확신이 있었고, 만에 하나 손해가 나더라도 그 와인을 아들에게 물려주면 최소한 아들이 나중에 아빠의 와인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평가해 주며 그 와인을 즐겁게 마시며 할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아들이 4살 되던 해에 할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Ch. Lafite Rothschild 2003 (Imperial), Domaine du Pegau (CNDP) Cuvee da Capo 2003 (Jeroboam), Romanee Conti 2003 (Magnum); Grand Echezeaux Henri Jayer 1990; Chambertin A. Rousseau 1989; Ch. Latour 2000, 2003 (Imperial); Ch. Margaux 1996; Harlan 1994; Ch. Montrose 2003; Ch. Cos d’Estournel 2003; Ch. Mouton Rothschile 2000 (Jeroboam), 2003 (Imperial); Ch. Haut-Brion 2003 등등을 구매하여 런던의 보세창고(본 칼럼 8편 참조)에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최근에 Liv-Ex의 가격을 확인해 보니 역시 나의 초기 예상대로 가격이 꽤 많이 상승했다. 초기 투자 원금 대비 약 6~7배 정도가 넘어 아들이 대학 졸업할 때가 되면 아주 작은 아파트라도 장만해 줄 수 있을 것 같다.한때 나는 은퇴 후 프랑스 보르도의 한 작은 와이너리를 인수하여 그곳에서 와인과 함께 여생을 보낼까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와이너리 관리와 와인 제조, 판매, 유통, 마케팅 등을 실제로 한다고 상상하니 나의 평온해야 할 여생이 끔찍한 스트레스로 점철될 것 같아 포기하였다. 폐쇄적인 프랑스 사회에서 동양인이 개인으로 와이너리를 경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요즘 나의 즐거운 관심은 아주 작은 규모나마 와인 사업을 아들과 함께 구상해 보는 것이다. 아담한 와인 바도 좋고 소규모 와인 수입상도 좋고 와인 펀드도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마시고 즐길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게다가 사업도 잘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명가 중 조니워커도 원래 회사 명칭은 ‘Johnnie Walker & Sons’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으킨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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