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업의 3요소4년 전 개업할 때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던 세 가지는 비용, 시스템 그리고 수임이었다. 어떻게 하면 비용을 규모 있게 지출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의뢰인이 맡겨준 사건을 일관된 수준으로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할 것인가.이 세 가지는 개업한 변호사가 항상 고민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변호사 본연의 업무이기보다는 경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 변호사는 현업이면서 경영자회사를 보면 상품이나 용역을 창출하는 업무를 맡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현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 대표이사를 보좌하면서 인사, 기획, 재무, 홍보, 보안, 총무, 구매 등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스탭'이라고 한다. 그리고 각 업무의 리더 내지 팀장들은 '경영진'으로 분류가 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현업’이면서 동시에 ‘경영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건을 처리하고 자문을 수행하는 변호사로서의 본연의 업무는 ‘현업’의 역할이다. 비용과 시스템, 그리고 수임을 고민하는 일은 ‘경영진’의 역할이다. 3. 업무 시스템,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변호사 사무실이 요구하는 시스템은 어떤 기술적인 체계나 PC에 존재하는 업무용 프로그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의뢰인이 맡겨준 사건을 일관된 수준으로 처리해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의 신뢰를 확보하는 업무체계를 말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면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업무의 선후에 따라 치고 빠지는 유기적인 협업이 가능해진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변호사와 스탭 누구나 자기 업무를 숙지하고 현재 업무 간의, 현재 업무와 미래 업무 간의 '우선순위설정'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의 업무를 기획하고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4. 업무를 기준으로 사람을 배치하기이것이 가능하려면 첫째, 업무를 기준으로 사람을 배치해야 한다. 특정한 1인에게 모든 업무를 맡겨두거나 그때그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업무를 맡기는 것은 사람을 기준으로 업무를 배치하는 것이다. 각자의 업무의 범위가 불명확해지고 업무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낮아진다.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할 수 없게 된다. 사무직원 채용 공고를 내면 비서/송무/총무 등 모든 업무가 가능하다는 지원서류를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다. 전 사무실은 업무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순수한 의미의 멀티 플레이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업무를 기준으로 사람을 배치한다는 것은 업무를 명확히 구분해 놓고 업무별로 사람을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내 업무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기가 용이해진다. 업무에 대한 예측가능성도 높아지고 일관성 있게 반복적으로 확보되는 자기 업무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진다.5. 업무적 소통을 활성화하기둘째, ‘지시와 보고’보다 ‘협업과 소통’을 활성화해야 한다. 지시와 보고는 업무의 시기, 속도, 정도 등에 관한 자발적인 판단이나 평가를 방해한다. 스스로 업무의 시작일, 마감일을 정하도록 배려하고 업무 간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이런 문제를 수시로 공유하고 협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실수를 했을 때 행위자를 지적해 소통을 위축시키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실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협업은 실수를 다 함께 보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수를 협업으로 복구하는 것을 다 같이 경험한다면 소통은 한층 활발해질 수 있다. 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부여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심리적 안전감은 나의 결점, 생각, 실수 등으로 인해 내가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로 정의된다. 셋째, 업무 일정과 사건 진행정보를 모든 구성원들에게 고르게 공유해야 한다. 정보가 편중되거나 누군가 독점하면 이른바 허용되지 않은 권력이 발생한다. 가장 큰 폐해는 소통의 저해다. 정보는 수집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과 적용, 즉 처리의 대상이다. 6. 업무의 효율성을 추구하기업무가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효율적이지 못하면 자발적인 업무 수행이나 협업과 소통은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구성원들이 업무처리 방식에 대해 수작업보다는 시스템, 지금보다 더 나은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부가세 신고기한을 앞두고 하루 종일 영수증만 세고 앉아 있는 구성원, 소송 기일 정리를 위해 주구장창 업무수첩에 빼곡히 적는데 골몰하는 구성원, 엑셀로 기일부를 관리하다가 실수로 파일을 삭제하고선 복구하느라 전전긍긍인 구성원, 우리는 이런 모습을 주변에서 쉽게 접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아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들이다. ‘아, 그런 건 다 직원이 알아서 하면 되지 변호사가 뭘 관심을 두고 돈을 쓰나?’ 이런 생각은 경영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7. 업무 지원 프로그램 보급률이 낮은 이유내가 변호사가 되기도 전에는 사무실의 모든 소송 정보가 그저 한 사람, 즉 사무장의 손에 들린 업무수첩 안에 적혀 있었다고 한다. 드물긴 하지만 요즘도 이런 사무실이 있단다.변호사가 된 2008년경, 그때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에서는 송무팀이 엑셀 파일에 정리해서 매주 업데이트하는 기일부라는 것이 있었다.지금 우리 사무실은 ‘로탑’이라는 법률사무소 업무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과거 엑셀로 존재했던 기일부를 전산화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추가로 대법원 홈페이지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나의 사건검색'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등 아주 파워풀한 기능이 있어 손쉬운 업무를 가능하게 해준다. 로탑은 그 외에도 매우 많은 기능을 갖추고 있다. 우리 사무실도 모든 기능들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무실에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사용하지 않은 기능도 있다. 왜냐하면, 업무 지원 프로그램은 송무 업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므로 우리가 필요한 만큼 취사선택하면 되지, 도입했다고 해서 프로그램 이용이 주가 되어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일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물론, 지금도 업무 지원 프로그램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점은 없는지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법조계에는 이런 업무 지원 프로그램이 크게 활성화 되어 있지 않다. 전체 변호사의 10% 정도가 사용한다는 말도 들린다. 효율적인 업무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는 내게는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계속 반복해서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것은 담당 직원의 경력에도 긍정적이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의뢰인에게도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확실히 경영의 영역이다. 업무 지원 프로그램의 보급률만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법조계에 경영에 대한 마인드 세팅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8. 비용에 대한 고민업무 지원 프로그램을 쓰는 것은 고정비용이 추가되는 일이다. 그런데 비용의 개념도 전통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마치 형법 각론에서 등장하는 폭행 개념 4분설처럼 비용에도 비용 개념 2분설이 존재한다. 비용은 아껴야 하는 비용과 태워야 하는 비용으로 나뉜다. 좋은 변호사와 스탭을 합류시키고 고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태워야 할 비용이다. 의뢰인을 위해 쓰는 모든 비용은 더더욱 태워야 할 비용이다. 가장 아껴야 할 비용은 경영진 중에서도 CEO가 쓰는 비용이 아닐까?9. 업무 지원 시스템을 넘어우리 사무실에서는 로탑 이외에도 여러 가지 솔루션을 각자 해당 업무의 개선 및 효율화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변화된 미래보다 불편한 현재를 선호하는 구성원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파트너일 수도 있고 소속변호사일 수도, 스탭일 수도 있다. 업무에 변화를 주면서 솔루션을 도입하는 일은 조금 과장하면 사무실을 새로 셋업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이벤트인 것 같다. 로탑만 하더라도 초기에는 어쨌거나 우리 사무실 모든 사건을 로탑에 한꺼번에 옮겨 담는 작업이 불가피했다. 일시적으로 사건 진행과 사무실 업무 전반에 큰 부담이 생겼었다. 그런 과정에서 변화를 함께 감내해야 할 구성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일이 제대로 잘 이루어졌는지는 돌아보면 늘 아쉬움과 후회가 남았던 것 같다.최근 우리 사무실은 여느 업무 지원 시스템이 구현하지 않는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소송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의뢰인에게 전달하는 기능이다. 이 기능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수의 변호사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는 판사가 아니다. 그 업의 속성상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의 관리는 업무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소송 진행 상황을 의뢰인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의뢰인의 의사결정을 받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의뢰인이 고민하는 시간 동안 우리 사무실도 나름대로 현재 상황과 향후 계획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고 의뢰인을 상대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얼마 전, 우리 사무실은 외부 업체와 개발용역계약을 맺고 그런 기능을 구현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설령 이번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이 나게 되더라도 우리 사무실이 투입한 비용과 시간, 노력은 우리 사무실의 무형의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가진행했던 업무들을 더 정밀하게 살펴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사무실은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하고 새로운 형태의 업무 지원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까?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오늘도 구성원들과 치열하게 소통하고 있다. 이세원 변호사(법률사무소 서화담·C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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