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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놉티콘] 두 장의 사진이 보여주는 리더십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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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다. 첫 번째 사진(아래)의 배경은 2001년 9·11 테러 직후의 미국 뉴욕이다.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져 내린 현장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 있다. 점퍼 차림으로 시멘트 잔해 위에 올라선 그는 소방관의 어깨에 손을 얹고 확성기를 든다. “우리는 수천 명을 잃고 슬퍼하고 있지만 훌륭한 시민들과 함께 굳건히 버텨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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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 테러 <사진=연합뉴스>

 

두 번째 사진(아래)이 촬영된 곳은 2005년 8월 말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상공이다. 부시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을 타고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초토화된 뉴올리언스 지역을 시찰한다. 그가 비행기 유리창을 통해 현장을 내려다보는 장면이 신문에 실린다. 몇 년 뒤 부시는 문제의 사진에 대해 “엄청난 실책”이라고 자인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해야 했어요. A) 사진을 찍지 맙시다. B) 루이지애나에 착륙합시다….” (2010년 11월 NBC 방송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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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카트리나 <사진=연합뉴스>

 

이 두 장면은 부시의 리더십이 어떻게 롤러코스터를 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후 퇴임할 때까지 국정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제 많은 미국인들은 대통령 부시를 무능과 무책임으로 기억한다. 부시 진영의 수석 전략가였던 매슈 다우드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카트리나로 국민과 대통령의 유대감은 단절됐다. 그것으로 우린 끝났다.”

우리 인간은 다면체다. 여러 겹의 얼굴로 살아간다. 대개는 착한 얼굴로 살다가도 종종 나쁜 사람으로 변신한다. 미국 전직 검사장이 쓴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당신은 당신이 저지른 최악의 행동보다는 나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이 한 최선의 행동보다는 못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美 부시는 왜 무능으로 기억되나
정치인은 단 한 컷으로 평가된다
현장에선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뉴스에 등장하는 공적인 인물들은 불행히도, 단 하나의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그 한 컷이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숙명이다.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 그들은 어떤 인물이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더구나 이목이 집중되고 카메라 뷰파인더가 향하는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다.

부시 다음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는 연설을 할 때면 연단으로 뛰어서 올라갔다. ‘젊은 리더십’을 상징하는 제스처였다. 그런데 제스처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가 2013년 11월 이민개혁안 관련 연설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청년들의 고성에 연설이 계속 끊겼다. “불법이민자 국외추방을 멈추도록 행정명령을 발동해주세요!” 오바마는 수행원들에게 손짓했다.

“청년들을 그냥 두세요.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는 청년들을 차분하게 설득했다. “우리는 법치국가입니다. 민주적 절차를 따르는 것은 소리를 지르는 것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과정에서 여러분과 함께 싸워나갈 것입니다.” 오바마 한 사람만 칭찬받고 끝날 일이 아니다. 그런 인물을 배출해낸 미국 사회의 저력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명장면은 월드컵에만 있는 게 아니다.

참사의 충격 속에 위기의 그림자가 불안하게 어른거리고 있다.이런 때일수록 나라를 이끄는 여야 정치인과 관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는다. 잘 해내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민들은 뇌리에 박히는 한 컷, 한 컷을 결코 잊지 못 한다. 보라. 지금 눈앞에 어떤 모습들이 보이는가. 그들은 정녕 긴장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