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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의 문향(文香) 오디세이] 영웅 손기정의 탄생 110주년…한국마라톤 부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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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미국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맨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자 세계 언론은 ‘비(非)케냐 선수 우승!’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만큼 세계 마라톤대회에서 케냐 선수들이 우승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케냐, 에티오피아 마라톤 선수들의 활약상은 요즘도 여전하다.


1950년 4월 보스턴마라톤대회의 1, 2, 3위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였다. 이에 앞서 1947년 이 대회에서도 서윤복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우승자를 조련한 감독은 ‘마라톤 영웅’ 손기정(1912~2002).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은 육상 지도자로서도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카리스마와 자상함을 겸비한 손기정은 유망주를 찾아내 거목으로 키웠다. 참가경비를 마련하려 동분서주하는가 하면 보스턴 현지에서는 손수 밥을 짓고 고깃국을 끓여 선수들에게 먹이기도 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필자는 2008년 4월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한국 마라톤 영웅들의 족적을 따라 달렸는데 그때의 감동을 월간 《신동아》에 기고했다.

 

한국 마라톤은 한때 세계 최강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9월 베를린 마라톤대회에서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선수는 2시간 1분 9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인간의 한계라는 ‘2시간 벽 돌파’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한국의 현역 선수 가운데 2시간 15분대 기록자도 드물다. 이봉주의 최고기록은 2시간 7분 20초.

 
필자는 지난 4월 17일 아침에 서울국제마라톤대회를 참관하러 잠실 올림픽경기장으로 갔다. 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되었다가 오랜만에 열린 대회에서 결승선에 들어오는 선수들을 육안으로 보기 위해서 였다. 선두그룹에는 아프리카 선수 일색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한참 지난 후에야 드문드문 들어왔다. 이런 현상은 이봉주 은퇴 이후에 반복되고 있다. 한국 선수의 국제대회 입상은 이제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이 전문 선수와 함께 뛰는 대회에서 40~50대 아마추어 우승자가 20대 전문 선수보다 기록이 좋은 경우도 있다. 전문 선수들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기권하기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중장거리 육상 선수 가운데 풀코스 마라톤을 한 번도 완주하지 못한 이도 적잖다.

 
올해는 손기정의 탄생 110주년, 타계 20주년이다. 해마다 11월엔 서울 잠실 일대에서 ‘손기정 평화마라톤대회’가 열려 영웅을 추모한다. 서울 만리동 양정고교 옛터에는 손기정 기념관이 있다. 최근 새롭게 단장하여 관람객을 맞고 있다. 지하철 충정로역에서 500미터 남짓한 거리이니 찾아가기도 쉽다.

 
손기정은 올림픽 우승 직후에 전남 나주에 사는 지인에게 보낸 엽서에 ‘슬푸다’라는 세 글자만 써서 보냈다. 시상대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섰다. 나라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 그는 민족의식이 강했고 마라톤으로 항일운동을 했다.


보스턴 우승자 함기용 옹이 지난 9일 타계했다. 세계 정상에 섰던 한국 마라톤 영웅들의 위용을 이어갈 후배 선수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고승철 언론인·저술가(전 동아일보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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