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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과 함께

[법의 신과 함께] 살인자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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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전날이면 아버지는 서랍장 깊숙이서 손때 묻은 사진기를 꺼내셨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물건이라며 한참 동안 자랑을 늘어놓으시곤 사진기 덮개를 열어 펌프로 훅훅 먼지를 털어내셨다. 능숙한 솜씨로 필름을 끼우고, 사진기 가방에다가 필름 대여섯 개를 더 챙겨 넣으셨다. 볕 좋은 소풍날, 사진기 앞에서 한껏 웃으면 사진기를 들고서 여길 보라며 휘휘 손짓을 하던 아버지의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얼른 사진을 보고 싶어, 퇴근하는 아버지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아버지가 사진관 봉투에 사진과 필름 조각을 담아오시는 날에는 온 가족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눈 감고 찍은 사진, 햇빛을 등져 새까맣게 나온 사진들에도 ‘이것도 추억이지!’하며 까르륵 웃었다. 사진을 다 돌려보면 어머니는 책장에서 사진첩을 꺼내 사진 몇 장을 골라 붙이셨다. 그 옆에 메모를 적고, 색연필로 꽃 한 송이를 그려 넣으셨다. ‘1991년 5월, 거장 소풍, 아빠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무겁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진 한 장이 가볍게만 느껴진다. 언제든, 어디서든 휴대전화로 손쉽게 시간을 담는다. 즉석에서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하고, 얼마든지 수정한다. 물론 다시 찍을 수도 있다. ‘인생사진’은 곧바로 SNS에 공유한다. 토도독 손가락만 움직이면 메모에다가 스티커까지 덧붙일 수 있다. 필름이 부족하진 않을까, 언제쯤 사진관에서 연락이 오려나, 사진이 바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이제 낭만으로만 남았다.

힘들 때마다 들여다 볼사진 한 장 있었다면
철저한 섬이었던 그를멈춰 세울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사진은 무겁다. 사진은 여전히 인간을 대신해 추억을 기억한다. 사진이야 흔하지만, 사진에 담긴 이들과 시간들은 흔하지 않다. 사진 속에는 언제나 그리운 사람의 얼굴과 한 번쯤 되돌아가고픈 시절이 있다. 1991년 5월 놀이동산에서 찍은 사진만큼이나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찾아간 전집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가을 주꾸미를 낚아 올리고는 흔들리는 통통배에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소중하다.

그는 살인자였다. 그가 휘두른 칼끝에 귀한 목숨들이 스러졌다. 검사로서 공분이 들었다. 그에게 마땅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피해자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위로받겠지 싶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모든 족적을 쫓았다.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터 최근 병원 진료 내역까지 샅샅이 살피고, 그의 휴대전화를 뒤졌다. 통화녹음에는 층간소음을 이유로 피해자들을 괴롭히고서 태연히 음식을 주문해 먹는 그가 있었다. 도무지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었다. 범행 전 행적을 찾기 위해 사진들을 훑었다. 그런데 기이하고, 기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을 해코지하는 괴한을 찾는다며 집 주변과 길거리를 찍은 사진들,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다가 엉겁결에 찍힌 듯 흔들린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색한 미소로 찍은 가족사진 하나, 친구와 어깨동무를 걸치고 찍은 사진 하나 없었다. 가끔 그가 멀리서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이 있었다. 가족처럼, 연인처럼 보이는 이들은 하나 같이 웃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 부러움이 묻어 있는 듯했다. 괴물이 되기 전 그는 철저한 섬이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하는 따뜻해 보이지만 지독히 매정한 한 줄로 서둘러 섬 밖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그러다 그 누군가 안에는 검사도 있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왔다.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겠노라 선서했지만 일어난 사건을 처리하는 데만 골몰할 뿐, 벌어질 사건을 막는 데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벌어질 사건을 막는 편이 더 효과적으로 선서를 지키는 일임에도.

세상에 없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못하자, 하늘을 우러르기는커녕 땅조차 바라볼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검사로서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그 섬에는 다리가 놓였을까? 놓인 다리를 따라 그의 사진첩에 힘들 때마다 들여다보고 싶은 사진이 딱 한 장이라도 건네졌다면, 그날 밤 칼을 쥔 채 섰던 그를 멈춰 세울 수 있었을까?


정거장 검사(서울중앙지검·<슬기로운 검사생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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