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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의 추상과 구상

[김지형의 추상과 구상]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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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방’, ‘대응’, ‘개선’
문제 해결의 솔루션으로 꼽는 세 단어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막는 ‘예방’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래도 문제가 생겼다면 합당하게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예방과 대응에 빈틈이 없었는지 살펴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고쳐 나가는 ‘개선’ 또한 중요하다. 어느 하나라도 부실하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 ‘예방’
‘중대재해처벌법’이 올 1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중대재해가 거듭거듭 발생하는’ 문제 상황을 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누군가 강한 처벌을 받는’ 점을 문제 상황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무엇을 문제 상황으로 삼느냐에 따라 예방의 초점은 달라진다.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 발생을 막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가’로 목표가 전도될 수 있다. 기업과 기업을 조력하는 법률가 등이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이 법 시행 전, 모 중견 기업그룹 회장에게서 들은 얘기다. 건강 문제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70세에 일부 계열사의 등기 대표이사로 경영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 계열사는 모두 중대재해의 위험이 있는 회사라는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위험에 뛰어든 것이다. ‘회사 안에서 최고경영자의 의지를 이보다 더 잘 전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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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응’
6년 반쯤 전, 지하철 구의역에서 19세 꽃다운 나이의 청년이 역에 진입하던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사고가 있었다. 청년은 그때 승강장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용역업체 노동자로 선로에서 장애물검지센서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휴먼 에러(human error).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했을 때였다. 이 단어가 그저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란 본디 실수를 저지르는 존재’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안전 분야의 기초 전문용어인 것도 뒤늦게 알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인명사고 때 종종 사고원인의 하나로 작업자의 잘못이 거론된다. ‘작업자가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안전은 물론 작업자 스스로가 먼저 챙겨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꼭 놓치지 말 것이 있다. 바로 휴먼 에러다. 사람은 본디 실수를 저지르는 존재다. 따라서 작업자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사고가 생기지 않게 방도를 갖추어야만 제대로 된 안전관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작업자의 실수를 탓하기에 앞서, 실수가 있어도 사고가 생기지 않게 하지 못한 잘못을 먼저 얘기해야 한다. 이것이 휴먼 에러를 말하는 이유다. 이것을 쏙 빼놓고 희생자 잘못을 운운하는 대응은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 ‘개선’
3년여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노동자 김용균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특조위를 마무리하는 조사보고서의 발간사를 쓰게 되었다. 모든 글은 첫 문장 쓰기가 가장 어렵지만, 이 글은 더욱 그러했다. 며칠을 끙끙대다가 마침내 첫 마디를 끄집어냈다.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끔찍한 사고가 난 암울한 일터가 안전한 곳으로 환히 밝혀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그 후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간 반복되어 온 중대재해를 이 법으로 막을 수 있다면 법의 취지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올해만 해도 9월 말까지 산재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가 모두 51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법이 던진 개선 과제는 아직은 한참 미완이다. 하지만 중대재해 예방에 진심인 기업들이 차츰 눈에 띈다. 더디더라도 희망은 있다.


# ‘제언’
최근 또다시 일터에서 젊은 제빵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이 있었다. 이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떠올리기조차 힘든 참사가 벌어졌다. 깜깜한 곳은 일터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고, 드는 것은 자괴감뿐이다. 무엇으로 이들 고인과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 것인가.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앞선다. 명제에 머무르는 ‘생명 존중’이 아니라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실천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작업자에게 안전수당 지급 등의 당근제, 자발적 작업중지제, 스마트 기술 활용 등이 한 예이다.

‘여태 아무 일 없었는데 무슨 일 있겠어?’라는 안이함은 늘 경계해야 한다. 위험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말고 최악의 경우까지 모두 상상해야 한다.

정조의 가르침이다. “이치를 따질 때는 반드시 깊이 생각하고 힘써 탐구해야 한다. 의심할 것이 더 이상 없는 곳에서 의심을 일으키고, 의심을 일으킨 곳에서 또다시 의심을 일으켜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는 완전한 지경에 바짝 다가서야 비로소 시원스럽게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이런 의심과 깨달음이 마냥 절실하지 않을까?


김지형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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