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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광장

미국 인플레 감축법(IRA)의 숨은 위험

전기차 ‘플랫폼’ 경쟁의 공정한 기반을 훼손할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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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바이든 행정부는 북미산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였다. 이로 인해 당장 국산 전기차 업체의 미국 내 판매량이 9월에 대폭 감소했다가 10월에 일부 회복되었지만 내년부터 본격적인 피해가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출고 중인 전기차는 대부분 IRA 시행 이전 계약분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1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의 미국 경제에 대한 기여를 고려해서 IRA의 이행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해 개선의 전망이 다소 밝아지기는 했으나, 향후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기 전에 우리의 논리를 더욱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IRA의 영향에 대한 지금까지의 분석은 거의 '제조업'으로서의 전기차 산업에만 집중되어왔다. 이 법의 목적은 흔히 미국 내 일자리를 확보하면서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폭넓게 분석하는 경우도 IRA로 인해 부품·자동차 및 충전기를 포함하는 전기차 '제조업' 생태계 전반이 미국을 중심으로 짜여질 것을 전망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법의 더욱 심각한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IRA로 인해 전기차를 중심으로 하는 '플랫폼' 생태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될 가능성이다. 전기차는 스마트폰을 넘어서는 차세대 플랫폼 생태계의 핵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 전기차에 대한 차별적 혜택은 플랫폼 신대륙을 놓고 벌어지는 글로벌 경쟁의 공정한 기반을 훼손하고 미국 기업이 우위를 선점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는 단순한 자동차의 영역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전기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자 컴퓨터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선도한 것은 테슬라이다. 과거에는 자동차의 각 부품이 별개의 운영체제(OS)를 갖고 있었으나, 테슬라가 모든 부품을 통합 운영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였다. 그 결과 테슬라 전기차는 스마트폰처럼 소프트웨어를 무선 업데이트하고 앱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테슬라가 전기차의 애플로 불리는 이유이다. 물론 현재의 자동차 운영체제는 인포테인먼트와 차량 제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향후 이를 중심으로 스마트폰 못지않은 풍성한 생태계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앞으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다양한 앱들을 통해 정보, 콘텐츠, 상품, 용역 등을 대규모로 유통시킬 수 있는 플랫폼 생태계의 핵심 단말기가 될 것이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면서 운전자의 손과 눈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전기차 플랫폼의 상업적 잠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어 나아갈 것이다.

이러한 전기차 플랫폼의 막대한 상업적 잠재력에 눈뜬 많은 업체가 이미 자동차 운영체제 시장에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기업들은 현재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로 익숙한 구글의 운영체제를 활용하는 그룹이다. 르노-닛산-미쓰비시, 혼다, 포드, 볼보, GM 등이 이에 속한다. 이 그룹의 단점은 운영체제를 업체별로 차별화하는 데 제약이 있고 플랫폼 운영의 핵심 역량을 외부 업체인 구글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전기차 업체들의 생태계 수익 창출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독자 운영체제를 개발한 그룹이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토요타 등이 이에 속한다. 현대자동차는 처음에는 구글의 운영체제를 활용하려 했으나 최근 독자 운영체제 개발로 선회하였다. 이 그룹의 단점은 자사가 생산한 완성차에만 운영체제가 탑재되므로 그 이용자 수가 적어 플랫폼 생태계의 성장성이 제한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테슬라와 현대처럼 독자 운영체제를 택한 전기차 업체의 가장 큰 과제는 대규모의 이용자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플랫폼은 이용자 수가 많을수록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양질의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운영체제는 여러 전기차 업체가 공유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 운영체제를 택한 업체는 자기 회사 차를 구입한 소비자들만으로 이용자 기반을 구축하기 때문에 전기차 시장에서 최대한 많은 점유율을 확보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승산 없는 싸움은 아니다. 급성장이 예상되는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여 지배적인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면 마치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기반으로도 얼마든지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기차 시장에서의 성장을 위한 열쇠가 될 수 있는 시장이 바로 미국 시장이다. 미국 시장은 규모 자체도 크지만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한다는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IRA가 시행되기 직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는 판매 1위, 현대는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대차의 실적은 단순한 제조업체의 관점에서는 선전한 결과로 볼 수 있지만 플랫폼 경쟁을 위해서는 많이 부족한 것이었다. 시장점유율을 더욱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국산 전기차의 성장은 커다란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다. 세액공제를 못 받는 국산 전기차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오히려 테슬라와의 점유율 격차가 급격히 확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 신산업을 향한 글로벌 경쟁에서 국산 전기차 업체의 날개를 꺾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현대차의 경우 2년 뒤 조지아 공장이 가동되면 IRA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년 뒤는 너무 늦다. 플랫폼 산업 특유의 쏠림 현상으로 인해 한번 기울어진 테슬라와의 점유율 격차를 좁히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금이 바로 글로벌 전기차 플랫폼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위한 기반을 회복하기 위한 골든타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전기차 협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또 다른 이유이다.


이기종 교수(숙명여대 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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