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신문

법의 신(新)과 함께

메뉴
검색
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신(新)과 함께] 제가 하는 일이 쓸모없는 일이라고요?

2022_withnewlaw_hwa.jpg

 

얼마 전 뉴스 기사를 읽다가 의아한 대목을 발견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쓸모없고 무의미하고 허튼 일자리인 '불쉿 잡(bullshit job)'이 자본주의적 위계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며 그 일례로 법률 컨설턴트, 기업 법무팀 변호사를 꼽았다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이런 직업은 노동자 스스로 노동에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직업을 위한 직업'이며, 그 실질적 내용과 의미가 결여 되었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한다. 10년 넘게 애정을 쏟으며 해왔던 내 일을 'bullshit job'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처음에는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고민해 보게 되었다. 법률 컨설턴트(자문 변호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법무팀 변호사의 일이 정말 쓸모없고 무의미한지.

내가 직접 경험한 기업 법무팀 변호사의 업무를 위주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일은 쓸모 있고, 유의미한 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법무팀의 역할은 통상 소송 등의 분쟁 대응, 법률자문, 계약서 검토, 컴플라이언스(법률 및 사내외 규정 준수에 대한 교육 및 진단 업무를 일컫는 경우가 많다)를 포함하는데, 회사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데 중요하지 않은 업무가 없다. 먼저 분쟁 대응. 현재 발생한 손실을 최소화하고, 장래의 손실을 방어하는 일이 어떻게 하찮고 쓸모없는 일일 수 있을까. 법무법인을 선임하는 경우이든, 법무팀의 변호사가 자체 수행하는 경우이든,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고, 회사에 유리한 사실관계를 발굴, 자료를 만들어 내는 것은 법무팀의 손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어렵다. 형사사건이나 규제당국의 점검, 조사를 대응하는 일이라면 그 중요성은 더 커진다.

법무팀은 회사가 지금 누리는
평안한 하루에 기여하고 있어
분쟁대응·자문·컴플라이언스
사업의 안정적 수행 위해 꼭 필요


법률자문만 해도 그렇다. 최근에는 신사업모델의 위법성이 문제가 되어 진행하던 사업이 좌초되거나 대표이사가 검·경 수사를 받는 일이 예전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불법을 저지르고자 하는 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법의 내용을 몰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새로운 사업이 생겨나고, 시대가 급변하는 요즘, 법률자문 업무가 예전보다 더 중요하면 중요했지, 덜 중요하지는 않다. 계약서 검토 업무는 어떤가. 통상 계약서의 문구를 검토하는 것은 중요한 업무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법무팀이 아닌 현업부서에서는 계약서의 상무조건도 읽지 않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하지만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모두 계악서 문구부터 다시 해석하고 법무팀부터 찾는다. 때문에 법무팀이 분쟁 발생 가능성까지 예상해서 현업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주요 조건들, 유의해야 할 조건들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안내해 줄수록 분쟁 예방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점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 컴플라이언스 업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정규교육과정에 법교육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회사 임직원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법률용어를 낯설어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어떤 프로세스로 업무를 진행하면 안전한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중요 규정이 어떤 것이고 규정을 왜 준수하라고 하는 것인지, 이를 준수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손해에 대해 납득할 수 있게 알려주는 교육 그리고 준수 여부의 점검은 사업의 안정적인 수행을 위해 효과적이고도 필요한 일이다.

일전 회사 다른 부서의 중간관리자 중 한 분이 '법무팀은 회사 내에서는 중요한 부서가 아니다. 생산팀이 상품을 만들고, 영업팀이 물건을 만드는 동안, 법무팀이 어떤 증명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Bullshit job'의 저자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때 '회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안한 하루에 기여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법무팀은 현재 회사가 수행하고 있는 사업이 적법한 형태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자문하고, 갑자기 들어올 수 있는 규제기관의 점검이나 조사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고, 거래상의 위험을 최소화한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유의미하고, 쓸모 있는, 'NOT bullshit job'이라고 생각한다.


김화령 변호사(서울회)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