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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놉티콘

[권석천의 시놉티콘] 1년 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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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 가을날 우린 무엇을 하고 있을까. 꺾이지 않는 물가를 걱정하고 있을까. 쉴 새 없이 북에서 동해로 날아오는 미사일들에 가슴 졸이고 있을까. 여전히 앙앙불락하는 여야의 모습에 혀를 차고 있을까.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누구누구가 어떻게 이합집산할지 궁금해하고 있을까.

아마도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 내 월급만 오르지 않는지 한탄할 것이고, 나는 언제쯤 직장을 그만두게 될지 초조해할 것이고, 아이의 진학과 취업이 왜 마음대로 안 되는지 답답해할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면 시중에 떠도는 정치인 얘기, 연예인 얘기, 주식 얘기로 화기애애하게 술잔을 기울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 더 있다. 1년 후 우리는 이태원 참사의 충격에서 완전히 비켜나 있을 것이다. 가끔 뉴스에 등장하는 재판 소식에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하고 새삼스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언론들은 참사 1년을 즈음해 이런 기사들을 내보낼 것이다. ‘사라진 핼러윈…이태원 인파 크게 줄었다’ ‘경찰력 대거 배치돼 사고 예방 주력’….

이런저런 TV 토론에서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펼는지 모른다. “1년이나 지났는데 언제까지 그 사고에 멈춰 서 있을 겁니까? 이젠 보내 드립시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꾸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는 건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엔 짙은 안타까움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왜 그들은 그때 그곳에 갔을까?’ 그리고, 자녀나 젊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있을지 모른다. “늘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 세상은 위험하니까.”

‘각자도생’ 벗어나지 못하면
또다시 참사의 충격 잊은 채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을 것


물론 1년 앞의 미래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예상을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스스로를 보라. 우린 벌써 그날의 떨리던 마음을 시시각각 잊어가고 있다. 비통함이나 경각심, 긴장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카프카 소설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처럼 각자 삶의 현장으로 흩어질 채비를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참사를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이슈로 보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 개개인의 이슈로 개별화하기 때문이다. “사고의 원인은 사고 당한 사람 자신”이라는 도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전철에 치여도, 발전소에서 설비 점검을 하다 몸이 끼어도, 축제에 갔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해도 희생자들의 “부주의” 탓으로 돌린다. 단연코, 그들은 부주의하지 않았다. 설사 부주의했더라도 별 탈이 없어야 하는 게 정상적인 나라다.

관련자들의 형사적·행정적 책임을 묻는 일도 필요하지만, 국가적 안전 시스템을 다시 세우는 일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차대하다. 정부가 수립하겠다는 재난안전종합대책만으론 충분치 않다. 재난은 예상한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결연한 의지, 죽지 않고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부터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린 과연 달라진 2023년 가을을 맞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한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1년 후에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무사히” 문구가 적힌 포스터의 기도하는 어린 아이처럼.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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