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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이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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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변에서 자주 듣기 어렵지만, 과거 동료 판사들과의 대화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말 중에 '일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 할 때 '일감[일ː깜]'이 아니라 '일감(一感)'입니다.


"나한테…이런 사건이 있는데, 일감(一感)이 어떠신가?"


"글쎄 일감(一感)으로는…같은데."


저도 처음에는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그저 '감(感)' 비슷한 것이려니 하고 그 말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감(一感)'은 '제일감(第一感)'이라고도 하는 바둑 용어로서 "배석(配石) 관계를 보는 순간 처음 떠오르는 착수(着手)의 느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장고(長考)의 결과가 아닌 직관적 판단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판사들의 대화에 바둑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재판을 하다 보면, 선례가 없거나 선례의 사정 범위가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부터 형사 사건의 양형에 이르기까지, 쉽게 결론을 내기 어려운 사건들과 마주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됩니다. 그런데 판사는 각자 독립된 판단의 주체이다 보니, 다른 판사가 고민을 덜어준다고 먼저 의견을 제시하기도 어렵고, 피차 비슷한 처지의 동료에게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일감(一感)이라는 말은 이와 같이 서로 묻고 답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마치 바둑에서 일감(一感)과 같이, 사안의 핵심적인 내용을 알려주고 장고(長考)의 결과가 아닌 직관적인 판단만을 요청함으로써 서로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그래서 의견 교환을 원활하게 하고자 나온 말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이러한 일감(一感)은 '최선의 결론'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료가 잠깐이나마 진지하게 고민하고 전한 일감(一感)과 그에 이어지는 대화 속에는 고민 해결의 실마리가 되거나, 적어도 자신의 생각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일감(一感)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어차피 최선의 결론을 내고 이유를 제시할 책임이 사건 담당 판사 자신의 몫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경험상 질문이 명료할수록, 질문과 관련한 필수적인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제공될수록, 그러면서도 설명이 장황하지 아니할수록, 유의미한 일감(一感)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흔쾌히 일감(一感)을 위한 시간을 내어줄 신뢰가 있다면 더 좋습니다.

최근 몇 년간 법원에 여러 변화가 있었고, 그 결과 법관사회의 '공기'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관들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처음 법복을 입은 날로부터 어느덧 19년여의 시간이 흐른 어느 가을날 밤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쪼개어 통찰력 있는 일감(一感)을 전해주셨던 여러 분들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민성철 부장판사(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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