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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법문정답] 정치인의 '책임감'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法問政答 : '법이 묻고 정치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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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하여 행정안전부·경찰·서울시·용산구 등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데 대해 "의무가 없는데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책임 문제는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이 있다"며 "'너희들이 왜 책임이 없냐'고 단순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행사 주최자가 없어) 안전 관리 주체가 없다는 것은 안전 관리를 할 책임자가 없다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법적 책임'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참사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스스로 안전 책임을 다 하지 않은 죽은 시민의 몫인가요.

정부가 참사 대신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김행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지금 수사중이고 또 감찰도 하고 있으니까 좀 신중하게 중립적 표현을 쓴 것"이라고 궁색하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정부가 이번 참사를 다루는 태도는 수사기관이 '사건'을 다루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본건 사고의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습니다…본건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향후 동일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개선하겠습니다…" 저는 '본건 사고’라는 표현이 아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정치권은 책임전가·책임회피하느라 무리한 논리를 동원합니다.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모든 원인은 용산 국방부 대통령실로 집중된 경호 인력 탓이다. 졸속적으로 결정해서 강행한 청와대 이전이 야기한 대참사다. 여전히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출퇴근하는 희귀한 대통령 윤석열 때문이다…"라고 썼던 페이스북 메시지를 삭제했습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 때 의경을 없애서 벌어진 참사'라며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전 정권 탓'을 했습니다.

참사의 원인은 진중권 교수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공동체적 책임' 칼럼에서 정확히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한 기자가 이게 다 '예견된 참사'였다고 썼다. 모든 예언의 문제는 꼭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야 적중한다는 데에 있다. 참사를 예견하고도 아무 일 안했다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사실을 말하면 이 사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참사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머릿속에 이런 사고의 가능성 자체가 애초에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도 진 교수와 마찬가지로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현실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는 관료주의의 무책임도 질타했습니다. "…용산구청장은 '주최자 없는 행사'를 '현상'이라 불렀다. 그 사고는 구청의 '책임'이 아니라는 얘기다. 경찰에서는 자신들에게 시민들의 이동권에 간섭할 '권한'이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핼러윈은 이렇게 당국의 '책임'과 '권한' 밖에 놓인 이상한 '현상'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주최자가 없는 핼러윈 축제의 안전을 경찰과 지자체가 함께 책임진단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공동체적 책임'이다. 이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공범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가치판단을 통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는 '동기'를 중요하게 보는 '신념 윤리'와 '결과'를 중요하게 보는 '책임 윤리'를 동시에 지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은 항상 '신념으로 선택된 결과에 책임진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책임 윤리'를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는 정치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로 열정·균형감각과 함께 '책임감'을 꼽았습니다.

이번 참사의 법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책임감' 있게 행동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나도 책임이 있나'는 생각이 든다면 확실히 책임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자기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편견인지는 몰라도 법조인은 책임이란 단어를 두려워하는 것 갑습니다.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제 책임이 큽니다"는 말이 두렵다면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는 어떨까요. 책임과 책임감은 법적으로 분명 다를테니까요. 책임보다 더 중요한 게 책임감입니다. 책임은 남에게 뒤집어 씌울 수도 있지만 책임감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박성민 대표 (정치컨설팅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