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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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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당사자가 되면 객관적인 판단력을 상실한다. 자신이나 가족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몇 번이고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내 사건은 통상적인 경우와 다르고, 상대방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핵심은 일반적인 사건·사고와 큰 차이가 없는데 지엽적이거나 엉뚱한 쟁점을 나열하는 때가 많고, 상대방도 평균인의 범주 안에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사정을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고, 온갖 사연이 얽혀 있는 사건을 단순화하는 것이 억울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들이 눈을 가리면서 사건의 본질을 보지 못한다.


당사자 입장이 되면 결론을 먼저 내리고 유리한 법조문이나 판례를 찾은 다음 논리를 비틀기 때문에 사실도 왜곡되어 보이기 쉽다. 시각이 달라져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라서 평소에 논리적인 사람도, 인품이 훌륭한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종종 이치에 맞지 않고 사실마저 다른 주장을 신념에 가득 차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십중팔구 이해관계의 당사자이거나 어느 한쪽 편에 선 사람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실’이라는 것도 ‘객관적 사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용어나 법조문 해당 여부에 대한 판단이 포함되는 ‘법률적 사실’이 있고, 개별 사건의 취사선택이나 관점에 따라 개념 자체가 달라지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나마 객관적이라는 ‘사실’이 그러할진대, 가치판단이 포함되는 쟁점에서 견해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통용되는 객관적인 기준은 필요하고, 그것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관이나 보편타당한 논리 또는 확립된 법조문으로 구체화되곤 한다. 그런데 사건의 당사자에게는 그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들이 유난히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바른 판단 위해서는
판단하는 사람과 당사자가
분리되어야


꼭 자기 사건이 아니라도, 사람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사뭇 다른 사고와 판단을 하기 마련이다. 판사도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그렇게 고민스러웠던 사건도 판결문을 완성할 무렵에는 내 논리가 맞는 것 같고, 판결을 선고하고 나면 상급심에서 웬만해서는 뒤집힐 것 같지 않다. 검사들도 자신이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면 당사자보다 더 분개하는 경우를 가끔 보았다. 판단을 하기 전까지는 객관적인 제3자였지만, 이후에는 당사자와 유사한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판단하는 사람과 당사자가 분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양자가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사회적 쟁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분위기에서는 모든 국민이 당사자가 되어 판단력을 상실한다. 경제문제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대립으로 단순화하고, 부동산 문제를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입장으로 양분하고, 노동이나 고용 문제도 노동자와 사용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일도양단하는 식이다. 이처럼 양자택일을 강요하면 중립지대에 선 판단자가 없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이 나오기 어렵다.


다수결의 원칙이 존중되는 영역에서는 어느 한쪽 편에 섰던 사람도 지지를 얻으면 자신의 신념 또는 정책을 관철시킬 힘을 얻게 된다. 그것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니 객관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쟁점에서마저 이렇게 편을 나누기 시작하면 사실은 왜곡되고, 논리는 비틀어지고, 법리는 거꾸로 서게 된다. 법관의 독립이 중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당사자나 외부세력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유지할 의지와 능력이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이라는 것이다.

 

 

유영근 지원장(남양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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