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많은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장면 중 하나가 “Out of Africa”에서 메릴스트립이 로버트레드포드와 함께 노란색 쌍엽기를 타고 그림보다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대지를 비행하다가 메릴스트립이 황홀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을 뒤로 뻗어 로버트레드포드의 손을 잡는 장면이다. 모자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울려 퍼지며 펼쳐지는 그 장면은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인상 깊은 장면이다.(이 장면은 유튜브에도 여럿 올라와 있으니 시간내어 꼭 한번 보시기 바란다.)
오래전 Pichon Lalande 1989를 마시면서 불현듯 위의 장면이 떠올랐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 DVD를 틀어 그 장면을 반복해 보며 이 와인을 마시고 나만의 무아지경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였다. 그 아름답지만 아련하고 애절한 느낌을 눈과 귀 뿐만 아니라 입과 코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Pichon Lalande 와인에 대하여는 지난 3편 “며느리 와인” 참조.) 게다가 영혼을 감싸며 위로해주는 듯한 모자르트의 음악이 배경에 깔리며 청각을 통하여 애절함을 더한다. 천재 모자르트가 요절하기 직전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묘한 안타까움까지 더하여...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과 와인 Pichon Lalande
Pichon Lalande 1989에서는 부드럽고 우아하고 세련되고 지적인, 하지만 세상의 풍파를 겪어 내공이 쌓인, 중년 여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렇기에 불같은 운명적인 사랑을 내재율로 절제하고 승화시키는 격조 높은 아름다움이 있다. 비단같이 부드럽지만 너무 화려하지도 빛나지도 않은, 그러나 은밀하고 강력하게 유혹하는,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여 절대 얽매려 하지 않는, 그래서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국화 옆에서’가 오버랩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문득 어렸을 적 읽었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Only a man who has felt ultimate despair is capable of feeling ultimate bliss.”(인생의 최악을 경험해 보지 못하면 최상을 경험하더라도 그 훌륭함을 모른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한 병의 와인, 같은 잔의 와인에서 두가지 상반된 향과 맛과 느낌을 동시에 주는 와인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와인은 밝은 면, 화려한 면 (특히 부르고뉴 류의 와인), 아니면 무겁고 강한 면 (주로 보르도류의 와인)의 일관된 특성이 있는데, 가끔 같은 와인에서 동시에 이렇게 상반된 특성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무겁고 강한 느낌을 경험하기에 밝고 화려함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고, 어둠을 알기에 밝음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음이다.
나는 이 와인에서 우리의 정서 깊숙이 내재하는 “한(恨)”을 발견한다. 서양인들 한테는 참 설명과 공감이 쉽지 않은 개념인데, 어떻게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와인에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지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