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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新)과 함께] 검사도 막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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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이모가 풀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 아들 녀석의 자취방 냉장고에 한가득 밑반찬을 채워 놨더니 손 하나 건드리지 않아 죄다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스물이 넘은 녀석이 삼복더위에 땀을 흘리며 음식을 장만한 정성을 몰라주느냐고, 무심하다고 쏘아붙이며 이모 편을 들어주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아침은 토스트나 미숫가루로 때우다시피 하고, 나머지는 바깥에서 사 먹다 보니 어머니가 보내 주신 음식을 제때 먹지 못해 통째로 버렸던 경험이 많아서였을까. 어차피 못 먹을 음식, 보내지 말라는 아들의 말이 어머니에게는 무척이나 서운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큰이모에게 내뱉은 무심한 아들 녀석이란 말은 선로를 바꾸어 나를 마구 찔러댔다.

이렇듯 바깥에서 해결하는 끼니가 많다 보니 점심과 저녁이 소중하다. 특히나 잠시나마 일을 멈추고 맛난 음식으로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점심시간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책을 한 글자 더 읽겠다는 어쭙잖은 이유로 한 알만 먹으면 공복감이 사라지고, 영양균형까지 맞춰 주는 알약이 개발되길 바랐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점심시간 입안에 한가득 욱여넣는 밥 한 숟갈과 온 혈관을 카페인으로 적실 듯 한 번에 쭉 들이켜는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이제는 포기할 수 없다. 직장인에게는 점심식사가 직장생활에 유일한 낙이 아니던가?

하지만 초임 검사에게는 그 시간이 꽤나 고역이다. 점심 참석 인원을 확인하는 일부터 식당을 정해 예약을 하고, 이동 편을 알아보는 일까지 모두 초임 검사의 몫이다. 검사들은 이런 역할은 ‘밥총무’라고 부른다. 경험치가 쌓이면 밥총무쯤이야 너끈히 해낼 수 있겠지만, 갓 검사 생활을 시작한 초임 검사에게는 버겁기만 하다. 잔뜩 긴장한 터라 선배들에게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운 데다가 예약이나 주차가 어려운 식당도 많다. 게다가 갖은 난관을 뚫고 식당 예약에 성공해 한숨을 돌리고 있노라면 여기저기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쏟아진다. 조사가 늦어져 점심식사를 못하니 예약 인원을 조정해 달라거나 오늘은 속이 안 좋으니 메뉴를 바꾸자는 연락들.

직장인 유일한 ‘낙’은 점심시간
‘밥 총무’인 초임 검사는 괴로워
오늘 메뉴 뭘 할까 고민 또 고민
우리 사회 막내의 삶에 위로를


또다시 인원을 바꾸고 메뉴를 바꾸고, 식당 주인에게 너털웃음을 지으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다. 밥총무만 한다면야 수월하겠지만, 검사실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사건 당사자, 경찰, 변호사들의 전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지고, 그날 처리할 사건에 대해 묻는 부장검사의 호출까지 불 난 호떡집이 따로 없다.

초임 검사 시절 나는 흔히 말하는 ‘꼬인 군번’이었다. 후배 검사가 오지 않아 2년 가까이 밥총무를 했다. 덕분에 지역 맛집을 섭렵함과 동시에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선배들이 먹고 싶은 음식으로 둔갑시키는 경지에 오르기도 했지만, 밥총무를 시작하고서 처음 몇 개월은 도시락을 챙기는 어머니처럼 ‘오늘은 뭘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오전을 보내곤 했다. 그리고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었으면, 다들 불참해서 낮잠 한숨 늘어지게 잘 수 있었으면 하는 소원을 빌어보곤 했다. 언젠가 밥총무를 하기가 지독히도 싫어서 친구들에게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속 편한 소리를 한다며 위로는커녕 핀잔을 주었다. 2주 내내 감자탕만 먹는 부장님께 용기 내어 메뉴를 바꾸자고 말했더니 그 뒤 2주는 뼈해장국을 먹었다는 이야기, 지난밤 교수님의 회식 소식을 모르고 돈가스집을 예약했다가 호되게 혼났다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상사의 기호를 미리 파악해 최애 음식을 주문하거나 상사가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얼큰한 국물 요리를 예약하거나 복날에 보신음식 맛집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내는 일이 센스로 통용되는 우리 사회에서 막내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물론 검사도 마찬가지다. 사람 먹고사는 거 다 똑같으니까. 지금도 티는 나지 않지만 없어선 안 될 우리네 막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항상 고맙습니다.


정거장 검사(서울중앙지검·<슬기로운 검사생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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