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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오는가 : 국제 중재 150주년의 담대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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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 평화를 논하는 것이 공허한 외침일까? 전쟁과 분열로 국제사회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내셔널리즘과 보호무역주의, 경제 제재, 헤게모니 전쟁 등으로 또 다른 위기가 오고 있다.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그러한 위기의 순간에 탁월한 반전을 통하여 전쟁을 막고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문명을 보전하였음을 가르쳐준다.

150년 전 역사상 최초로 강대국들이 전쟁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하는 제도를 창안하였다. 미국 남북 전쟁 이후 미국과 영국은 영국의 부당개입에 대한 전쟁배상금 사건을 중재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그 중재판정부는 1872년 9월 영국이 국제법상 중립의무를 위반하여 미국에 피해를 입혔다는 근거로 미국에 1550만 달러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 중립을 선언했던 영국은 남부 연합에 비밀리에 군함을 지원하였다. 영국은 CSS 앨라배마호(Confederate State Ships Alabama)라는 군함을 남군에 지원하여 전쟁 중 2년 동안 50척 이상의 북군 상선과 군함을 공격하여 격침하였다. 북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미국 정부는 영국의 국제법상의 의무 위반행위로 인하여 전쟁이 2년 동안 더 큰 비용을 들여 지속되었다는 주장을 하며 영국에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된 것이다. 이에 영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하였다. 미국과 영국은 독립전쟁이 종료된 지 80여 년 만에 자칫하면 다시 전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국은 협상으로 전쟁을 피하고 중재로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워싱턴 조약을 체결하고, 앨라배마 클레임 문제를 위한 중재를 진행하기로 하여 영국과 미국이 각각 1명씩의 중재인을 선정하고, 스위스, 이태리, 브라질에서 3명의 중재인을 선정하여 5인 판정부를 구성하였으며, 우여곡절 끝에 판정이 내려지게 된 것이다. 150년 전의 앨라배마 중재판정부의 판정은 국제분쟁을 전쟁이나 무력을 통하여 해결하지 않고, 증거와 법리에 의하여 해결하는 방식을 합의함으로써 이후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규범을 국제질서에서 만드는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인류문명의 중요한 진보를 이루었다. 전 영국 대법원장인 톰 빙엄 경은 이 사건을 전쟁이 아닌 이성적인 분쟁해결을 통하여 미국과 영국의 국제협력의 시대를 연 사건으로 평가했다. (Tom Bingham, The Alabama Claims Tribunal, The International and Comparative Law Quarterly, Vol. 54, No. 1 (Jan., 2005))

미국 남북전쟁 후 영국 부당개입 배상금 중재가 시초
중재는 분쟁 해결 후 관계 복원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
우크라이나 사태 속 국제사회의 역할에 대한 회의 확산
전쟁 피하고 협력시대 이끌 평화적 분쟁해결 제도화 해야


전쟁이 아니라 중재를 통하여 국제분쟁을 해결한다는 평화적 분쟁해결 사상과 경험은 국제법상 규범화되어 1899년 만국평화회의 체제와 상설중재재판소의 설치, 1945년 국제사법재판소 창설로 이어졌다. 이는 확실히 공적인 분쟁과 사적인 분쟁에 대한 국제 중재에서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분쟁 해결에서 앨라배마 클레임 중재의 현대적 유산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에 세계 1, 2차 대전을 거쳐 다시 한번 국가들이 무력에 의존해 분쟁을 해결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게 되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하게 보였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국제중재는 상거래와 투자분야에서 견고히 발전해왔다. 1958년 발효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유엔협약 (“뉴욕협약”)은 중재판정의 승인집행 근거를 제공하여 국제 상사 중재를 활성화하였고, 1965년에 체결된 워싱턴협약은 투자 분쟁을 중재로 해결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였다.

국제중재가 중요한 분쟁 해결방식으로 인식된 이후 150년 동안 전 세계의 다양한 분쟁이나 갈등이 중재를 통하여 해결되었다. 그 클레임들 중에는 상업, 투자, 무역과 같은 경제 분쟁 등이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영토 분쟁, 전쟁이나 무력 분쟁에서 발생하는 클레임도 중재를 통하여 해결되어 왔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양국 사이에 위치한 비글 해협 (Beagle Channel)의 3개 섬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을 이어왔다. 1971년 양국은 중재 조약을 통해 비글 해협 분쟁을 중재에 맡기기로 하였다. 중재판정부는 섬의 소유권을 칠레에 부여키로 판정하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이듬해 판정에 불복하고 군사작전을 계획하였으나 교황청의 조정으로 1984년 양국은 평화 우호 조약을 체결하여 이 분쟁은 타결되었다.

1979년 이란에서는 이란 혁명이 발발하여 미국인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미국은 이란의 미국 내 재산에 대하여 압류를 하였으며 다수의 미국인이 이란을 상대로 법원에 제소하였다. 적대국인 미국과 이란은 1981년에 협정을 체결하였고 혁명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청구사건을 이란-미국 청구판정부 (Iran-United States Claims Tribunal)로 불리는 새로운 중재판정부를 헤이그에 설치하여 해결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란의 재산몰수와 미국의 이란 정부 자산 동결 조치에서 비롯된 여러 가지 클레임들을 40여 년간 중재절차로 해결하고 있다. 이 모델은 비록 적대국이라 하더라도 국민과 정부에게 발생된 클레임을 상호 합의하에 공정한 중재판정부로 하여금 해결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으로 평화적 분쟁해결이라는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수단의 아비에이 중재(Abyei arbitration)는 국경선의 획정을 중재로 해결한 사건이다. 1956년 수단은 수단 공화국으로 출범한 후 북부 이슬람계 수단과 남부 기독교계 수단으로 갈려 내전을 겪어야 했다. 끝내 평화협정이 체결됐지만, 여전히 남수단과 수단의 경계에 위치한 아비에이 지역의 경계선 획정 문제로 분쟁의 여지가 남아 있었다. 수단과 남수단은 중재를 통해 경계선을 확정 짓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은 2008년에 상설중재재판소를 통해 중재 재판을 열었고 1년 만에 판정부는 아비에이의 경계를 확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1998년에 양국이 시작한 무력 분쟁으로 양국 국민이 약 십만 명이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수십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한 끝에 전쟁이 종식되었다. 양국은 2000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 국경위원회와 청구위원회를 설립하였다.

위원회는 국경 분쟁 중재와 전쟁 관련 청구권 중재 두 가지 사안을 다루었고 청구위원회는 2009년 각각 에리트레아는 1억 6300만 달러, 에티오피아는 1억 7400만 달러의 손해배상액 판정을 내렸다. 청구 위원회는 불법 점령, 민간인 사살, 재물손해 배상, 전쟁포로에 대한 잔혹한 대우, 전시 성폭력 등과 같은 문제를 다뤘다. 국경위원회 또한 2002년에 판정을 하였다. 당사자들이 곧바로 결과에 대해서 수용한 것은 아니다. 16년이 지난 2018년에 비로소 양자가 합의를 하여 중재 협정이 체결되었다.

150년 전 미국-영국 간 앨라배마 청구중재에서 중재를 통한 분쟁해결을 통해 적대국이었던 미·영이 협력국가로 바뀐 경험이 있다. 중재를 통한 공적 분쟁의 해결은 비록 시간이 걸리지만 궁극적으로 분쟁당사자 간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공정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국제사회는 앨라배마 클레임 시절부터 그 경험을 축적하고 전쟁이나 파국을 막고 이성적 해결을 통하여 평화를 모색하는 노력을 점진적으로 형성하여 왔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국제법의 시대와 국제사회는 더 이상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회의가 확산되고 있다. 국제 중재는 지난 150년 동안 점진적으로 발전해왔고, 전 세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분쟁 해결 메커니즘으로 정착했다. 국제중재는 분쟁을 겪는 당사자의 극한대립으로 모두가 지는 게임이 아니라 분쟁 자체를 해결한 후 다시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므로 선택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동아시아는 인구가 많고, 경제도 비약적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동시에 다양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자 각국 간의 독특한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아직 갈등과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정치적, 법적 체제가 미미하다. 중재를 통한 평화적 분쟁 해결의 메커니즘을 정착시키면 분쟁이 심화되어가는 동아시아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분쟁당사자들이 중립적인 기관에 분쟁을 맡기고 그 결정에 승복한다는 것이 중재의 특성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중재의 틀이 다져지고 활성화된다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중재의 결과에 불복하고 무력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여태까지 전쟁이라는 선택지만을 택했을 뿐이다. 중재의 과정에서 상당 기간 국가들의 이행과 불복이 공존하면서 점차 국가들은 어떤 길이 옳고 더 유용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전쟁과 극한의 대립 시대에 과연 평화는 올 것인가? 유엔 헌장 제33조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중재를 명시하고 있다. 앨라배마 청구중재판정으로 국제중재가 확립된 지 150주년을 맞았다. 국제사회가 다시 한번 강대국 간의 전쟁을 피하고 대협력의 시대를 이끌었던 그 지혜와 합리성을 상기하며 평화적 분쟁해결을 제도화한다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평화의 시대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박은영 변호사 (분쟁과평화연구소 대표·전 런던국제중재법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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