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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K의 와인여정] (15) 와인, 생명 그리고 인생

절정 지나 종말 다다른 와인… 애틋함 더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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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종말이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모든 것은 궁극의 소멸을 향해 진행된다. 그 이유를 물리학에서는 열역학 제2의 법칙(일명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면, 모든 생명은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대부분의 인생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양한 형태로 경험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나는 약 10년 전에 런던에서 와인클래스를 주관한 적이 있었다. 1년간 내가 준비한 강의와 곁들여 다양한 와인을 시음하고 평가하는 코스였다. 그 코스에서 수백 가지의 다양한 와인을 다루었는데, 코스 마지막에 수강자들에게 ‘시음한 와인 중에서 최고의 와인이 무엇인가?’라 물었더니, 단연코 Cheval Blanc 1982라고 거의 만장일치로 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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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단계에 다가가는 최고의 명작 Ch. Cheval Blanc 1982.

 

* 와인의 '종말' : 와인이 숙성하여 절정기를 지나 더 이상 이전의 맛과 향과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생명력을 거의 잃어간다는 뜻

 

Cheval Blanc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정상급 와인이다. 프랑스 보르도의 St. Emilion의 대표적인 와인이며 1998년에 세계 최고의 럭셔리그룹 LVMH에게 인수되었다. Merlot와 Cabernet Franc이 주종이며, 특히 1947 빈티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10개에 항상 선정되는 최고급 와인이다. 그리고 1982 빈티지는 Robert Parker 등 대부분의 와인 평론가들이 1947 빈티지에 버금가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하던 와인이었다.

 

와인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 합(合)을 이루어 만들어 내는 작품이라고들 한다. 즉 기후가 좋아야 하고, 토양이 좋아야 하고, 그 결과물인 포도를 재료로 포도주를 빚는 인간의 재능과 노력이 삼위일체가 되어 창조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통제 불능한 영역이 바로 기후(날씨)이다(토양은 인간이 선택 가능하고 거름 잘 주고 잘 관리할 수 있다). 1982년 보르도는 그야말로 포도재배에 더할나위 없는 완벽한 날씨였다. 적당한 때에 알맞은 온도, 강수량, 일조량, 습도 등 모든 기상 조건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하늘의 축복을 듬뿍 받은 한해였다.


나는 이 Cheval Blanc 1982를 25년 전에 처음 마셔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부드러움과 강렬함, 그 깊은 고요함과 변화무쌍함, 섬세함과 묵직함 등 언뜻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특징들이 오묘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살아 숨 쉬는 신비로운 생명체 같았다. 나는 그때의 충격적인 경외감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이 와인을 거의 100번은 마셨던 것 같다.


지난 20여 년 동안 이 와인은 내게 환희, 열정, 강렬함, 봄날의 들판에 만발한 꽃의 물결, 화려함과 복잡함과 부드러움 등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나는 이 위대한 와인의 종말을 보기 시작했다. 이 와인이 과거에 보여주었던 그 엄청난 모습을 아련한 추억으로 남긴 채 이 와인은 이제 그의 마지막 챕터를 장식하고 있다.


나는 화려했던 절정기를 지나 거의 종말에 다다른 이 와인을 마시며 그 열정에 넘치고 화려했던 전성기를 회상하며 아련하고 가슴 아린 느낌에 먹먹해지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어진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의 구절처럼. ‘사의 찬미’ 노래의 구절구절이 생의 마지막 챕터에 와있는 이 와인의 애절함을 더 애틋한 심정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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