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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964년 겨울>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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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들을 선술집에서 만났다. 아니 삭막한 서울의 풍경이 우리를 포장마차로 밀어 넣었는지 모른다. 정체를 알 수 없으나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서른 댓 살의 사내와 25세의 대학원생 안 씨, 역시 25세의 나는 자기소개가 끝나자 대화가 끊겼다."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의 첫머리이다. 던져진 존재라는 실존주의의 풍취 속에 단절된 개인의 고독함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1964년은 내가 태어나던 해이다. 그해 1인당 GDP는 120달러였다. "마이카"는 꿈도 못 꾸던 때였고, 모 대학교 설문조사에서 1999년 GDP는 300달러, 2049년 500달러가 될 거란 예상이 제일 많이 나오던 시절이었다(2012.12.20.자 국민일보 참조). 이 선배들이 피땀 흘려주신 덕에 내가 중학교 입학하던 1977년에 천 달러가 되었고, 정체를 알 수 없던 사내 또래가 되던 1995년에 만 달러가 되었다. 십 년 남짓의 한 세대마다 한 digit이 올라간 것이다.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진 이래 이런 성장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뒤를 잇는 우리들은 거의 두 세대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반 digit의 성장도 이루지 못 하고 있다. 무엇으로 어떻게 옛 추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특별한 천연자원이나 유별한 관광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들거나 세상에 없던 용도를 덧붙여 파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얼마 전 신약 개발 회사를 운영하는 분으로부터 우리에게 K팝 등 세계를 휩쓰는 한류를 만드는 창의성이 있는 것을 보면 신약 개발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에 없는 신약 물질을 찾아내거나 합성해 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반면 기존 약물의 용도를 전환해 다른 병증에 적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한데 여기에는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한국인이 가진 창의력은 이에 딱 어울린다는 취지이었다.

우리 제약업계의 현실은 어떨까? 지면의 제약이 있어 상론할 수 없지만, 특허가 만료된 복제약과 자양강장제의 판매에 의존하여 신약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회사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가까운 일본은 과거 2000개 넘는 제약사들이 리베이트 제공을 통한 복제약 판매로 연명해 왔으나, 1980년대 이래 리베이트 규제와 복제약가의 과감한 인하 및 인수 합병 등을 통해 300개 정도로 줄여 다케다, 아스텔라스 등 신약 개발에 성공한 여러 회사가 나왔다. 그 열매는 달콤하기 짝이 없어 그들은 세계 50대 제약사 중 9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Fortune 선정 500대 기업 중 10개의 거대 제약회사들의 순익이 나머지 기업들의 순익을 넘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을 탐욕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런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엄청난 자본과 시간을 날릴 수도 있는 신약 개발 사업에 아무도 뛰어들지 않을 것이고 이럴 경우 치유되지 않는 환자들을 위해 각종의 의료 비용이 신약 값보다 더 지출되기 때문이다.

우리 복제약가는 오리지널약가의 53%로 다른 선진국들의 몇 배에 해당하고, 그중에는 화이자의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도 복제약과 같이 미국에 비해 무려 8배나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약도 있다. 이로 인해 국민의료비 중 의약품 비중이 OECD는 14%인 반면 우리는 22%로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우리도 일본의 성공사례를 따라 복제약가를 대폭 인하해 건보 재정의 건실화를 꾀하는 한편 260여 개 상장제약사들 중 경쟁력 없는 회사들의 도태 내지 인수합병을 유도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줘야 할 것이다.

비록 소설 속에서라도 우리 후손들이 서른 댓 살의 사내처럼 아내의 시신을 대학병원에 팔아 받은 돈으로 술을 마시고 남은 돈을 불더미에 던진 후 자살하는 비극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김병철 부장판사 (서울동부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