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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新)과 함께] 실패의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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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오늘은 세계 ‘실패의 날’이다. 2010년 10월 13일 핀란드 알토대학의 창업동아리인 ‘알토이에스(AaltoES)’는 ‘실패의 날’ 행사를 열었다. 벤처 성공의 경험이 아닌, 실패의 경험들과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함께 나누는 행사를 개최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필자가 그동안 써 온 이력서에는 성공의 이력만을 나열했지만, 오늘은 부끄럽고 아픈 ‘실패의 이력서’를 쓴다. 첫 실패는 대학입시. 모든 사람들이 무리라고 했지만 기어이 지원했고, 모두의 예상처럼 불합격. 재수 끝에 겨우 합격했지만 전국의 1등들만 다 모아 놓은 학교에서 늘 기죽어 지냈다. 고시공부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을 때부터 신림동에서 고시학원 다니며 준비했지만 번번이 실패. 27살에 육군훈련소 입대. 제대 후 한번 더 도전하였지만 또 실패. 이제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머니 실망하실까 봐 눈치만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백화점으로 데리고 가 양복 한 벌을 사주시면서 “이제 고마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 그 한마디가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대기업 법무팀에 31살 신입사원으로 입사했고, 공교롭게도 그해 7월 로스쿨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때 필자의 기준’으로는 봉급 잘 나오고 사내 복지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아직 설치도 안된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필자에게 어머니가 한마디. “니가 디딜 그곳이 땅이라면 당당히 딛고 나아가고, 늪이면 빠져 죽어야지 우짜겠노. 일단 내디뎌라.” 법전원 1기로 겨우 입학. 3학년 때 결혼 및 첫 아이 출산. 상반기에 치러진 졸업시험 실패, 다행히 하반기 마지막 졸업시험 겨우 합격. 그렇게 변호사가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실패의 연속. 박사논문 실패. 대형로펌 지원했지만 모두 낙방하며 실패. 이쯤되면 거의 실패의 달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실패를 떠올리고 또 분석하고
되풀이하지 않도록 되씹고…
실패에서 얻은 값진 소득은
의뢰인의 아픔에 공감 능력


지금도 실패의 연속이다. 사건을 맡기러 오는 의뢰인들은 한결같이 돈이 없다고 수임료를 깎으려고만 한다. 마음이 약해져서 수임을 하게 되더라도(이런 것을 소위 ‘약정의 실패’라고 한다) 일은 양심적으로 제대로 해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일은 열심히 하지만 고정비를 고려하면 손실이 나는 경우도 많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조직은 언젠가는 반드시 망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위험한 실패이다. 미래의 업무량을 예측하여 직원을 어느 정도로 늘릴지도 결단의 영역이다. 대표변호사는 변호사일도 잘해야 하지만, 생산관리, 인사관리, 재무관리 모두를 훌륭하게 수행해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개인의 실패의 영역을 넘어 조직의 실패가 되고, 이는 조직구성원 모두의 피해로 돌아간다.

사실 실패의 이력서를 쓰기로 용기를 낸 데에는 최근에 읽은 책 《실패를 해낸다는 것》(최재천 변호사 저) 덕분이다. 가히 우리나라 최초의 실패학 기본서로 평가할 만한 책에서 저자는 각종 실패 사례를 분석하며 성공이 아닌 실패가 인간의 본질이라 규정한다. 실패를 떠올리고, 실패를 분석하고, 다시는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되씹어야 하지만, 최재천 변호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므로 “오늘을 살라”고 강조한다.

실패의 이력서를 쓰다보니 ‘많은 시도를 했었기에 많은 실패를 하였다는 것. 수많은 실패에도 포기하고 않고, 다시 일어났기에 더 단단한 모습의 내가 되었다는 것. 지금의 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의 결과물이라는 것. 방심하고 있다가는 또 호된 실패의 고통을 겪을 것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실패의 달인’이 되고 나서 얻은 가장 값진 소득은 이런저런 실패의 사연을 가지고 우리 법률사무소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의뢰인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설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며.


정지웅 변호사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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