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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법문정답] 왜 지식인들조차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믿는가

法問政答 : '법이 묻고 정치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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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는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포퓰리즘과 탈진실이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21세기 포퓰리즘은 ‘인기 영합주의’라는 전통적 의미의 포퓰리즘과 다르게 ‘이념을 망라해 존재한다’, ‘엘리트 대 국민의 대립을 부각한다’, ‘정치적 다원주의를 반대한다’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트럼프 현상은 우파, 샌더스 현상은 좌파, 프랑스 ‘국민전선’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극우라면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그리스의 ‘시리자(SYRIZA)’는 좌파입니다. 포퓰리즘은 이념과 상관없습니다.

포퓰리스트는 기득권 엘리트에 맞서 국민주권을 회복한다는 명분을 내겁니다. 이것이 21세기 포퓰리즘의 성공요인입니다. ‘직접 민주주의’, ‘국민이 주인’,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얼마나 그럴듯한 말입니까. 국민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자신들의 불만을 대변하면서 “여러분이 주인입니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스트는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만을 진정한 국민으로 여기며 편을 가릅니다. 포퓰리즘의 최대 해악은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고 ‘네 편’은 ‘죽일 적’으로 몰고갑니다. 이들 옆에는 ‘팬덤’으로 위장한 ‘정치 훌리건’이 있습니다. 이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정신적 테러’, ‘언어 폭력’으로 상대를 위축시킵니다. ‘양념’, ‘에너지원’이라는 부추김은 이들의 폭력을 갈수록 대담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군중이 되는 순간 단순해져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돼


21세기 포퓰리즘은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열었습니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옥스퍼드 사전은 ‘포스트 트루스’를 2016년 올해의 국제적 단어로 선정했습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우리 모두 옳다’며 극단적 다원주의를 불렀다면 포스트 트루스는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며 극단적 진영 전쟁을 불렀습니다. 정치는 종교전쟁이 되었습니다.

사실과 주장, 진실과 허위, 정보와 오락, 신호와 소음이 뒤섞이면서 공론장은 마비되었습니다. 상대편 주장은 사실도 ‘가짜뉴스’가 되고, 우리편 주장은 거짓도 ‘대안적 진실’이 됩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단계를 지나 듣고 싶은 것만 들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중증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확증 편향’을 확산시키는 주범입니다.

사기일수록 그럴 듯 하듯 음모론도 그럴 듯 합니다. 저는 음모론을 믿지 않지만 음모론을 얘기하는 사람은 더 믿지 않습니다. 다섯 명 이상 입을 맞춰야하는 거짓말은 영원히 숨길 수 없습니다. ‘부정 선거’, ‘세월호’, ‘천안함’ 관련 음모론을 저는 믿지 않습니다. 유튜브에서는 1980년대 운동권의 ‘지하 지도부’와 공안기관의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여전히 존재하는 듯 주장하지만 그건 시대착오적 망상입니다.

네이트 실버는 <신호와 소음>에서 ‘소음에서 신호를 분리하려면 과학적 지식과 자기 인식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겸손’과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예측하는 ‘용기’, 그리고 이들 사이의 차이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여의도에는 소음이 넘칩니다. 많은 정보가 ‘지라시’에 사실인양 떠 다닙니다.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뭔가 냄새가 난다”며 대놓고 음모론을 떠듭니다. 대중은 엄청난 정보를 접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 빠져 올바른 판단을 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저는 소음 때문에 신호를 놓칠까봐 보지도(유튜브), 하지도(SNS) 않는 차단의 원칙을 택했습니다.

포퓰리스트와 유튜버는 자기 이익을 위해 그런다치고 배울만큼 배운 지식인들조차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믿는 이유가 뭘까요.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군중이 되는 순간 단순해집니다. 개인은 화려한 유채색입니다. 누구든 보수적이기고 하고, 진보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중도적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개인은 복잡합니다. 그러나 모든 색을 합치면 무채색이 되듯 군중이 되는 순간 흑백세계에 갇히게 됩니다. 전체주의가 민주주의의 적인 이유입니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브루제의 말이 생각나는 시대입니다.


박성민 대표 (정치컨설팅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