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신문

법의 신(新)과 함께

메뉴
검색
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신(新)과 함께] 창작자와 작품의 거리


2022_withnewlaw_kim.jpg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덕질'이란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이 단어가 지금처럼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대중문화 분야에서 '덕질'을 했던 나의 학창 시절 삶에 대해 말하자면, 부모님께는 스스로 용돈 먹는 하마가 된 것 같아 괜시리 죄스럽고, 친구들에게는 가까운 친구가 아닌 이상은 왠지 짝사랑을 들킨 것처럼 인정하기 부끄러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덕질'이 온라인 사전에까지 등재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현재 누구보다 당당하고 즐겁게 매일매일 각종 대중문화 콘텐츠를 “덕질”하는 삶을 즐기고 있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변호사가 작품을 직접 경험해야 하는 업무의 종류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저작권 침해 여부에 관한 법률 자문을 하거나 E&O(Errors and omissions) 보험 관련 업무를 해야 할 때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번 호기심이라는 강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기꺼이 팬(fan)이 되고 만다. 클라이언트에게 받은 자문료의 일부는 매번 유료 플랫폼에서 차곡차곡 저작권료 형태로 페이백(Pay back)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창작자를 대리하여 2차적저작물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는 원저작물을 만날 때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내 손으로 판다는 자부심과 기쁨은 말로 다하기 어렵다. 소설이었던 원저작물이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로 계속 변신해 나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복잡한 디지털 유통 체인망 거쳐
새로운 형태로 가공되는 저작물
창작자는 이익구조에서 멀어져
향후 저작권법 개정 결과에 주목


그런데 얼마 전 대중문화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어떤 분으로부터 오늘날의 이와 같은 창작 및 유통 환경에 대해 ‘창작자와 작품에 대한 권리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구조’ 라는 설명을 들어, 깊이 공감한 바가 있다. 실제로 최근의 저작물은 거대해지고 복잡해진 디지털 유통 체인망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가공되며 끊임없이 소비되는 구조 속에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창작자들은 자신의 저작물이 어디서 어떻게 가공되고 활용되어 수익이 발생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저작권 일체를 양도하는 이른바 ‘매절계약’을 통해 이미 권리가 양도된 창작자에 해당하거나, 회사에 소속된 창작자로서 저작권법상 업무상저작물이 성립한 경우라면, 창작자는 이 복잡한 디지털 유통망의 이익구조 속에서 사실상 배제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영상저작물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현행 저작권법 상 영상저작물 특례규정은 영상저작물의 경우 특약이 없는 한 영상제작자가 영상저작물의 이용에 필요한 대부분의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다수 창작자가 참여하는 영상저작물의 특성상 권리를 단순화시키지 않으면 많은 투자비용이 들어간 영상저작물의 원활한 이용과 유통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마련된 규정이다. 하지만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에 관해 양도가 추정된다는 내용에 대해서만 정하고 있을 뿐이고, 권리 양도에 따른 창작자의 대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이러한 법제 하에서 실무에서는 창작자가 영상저작물 제작 시 모든 저작재산권을 제작자에게 양도하는 계약 관행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 결과 현실적으로 영상산업에 종사하는 창작자의 경우 상당수가 영상저작물의 실제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수익의 배분을 주장할 수 있는 저작권법상의 권리가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결국 현행 저작권법의 영상저작물 특례규정은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창작자와 작품의 권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최근 국회에서 이루어진 '저작권법 개정안' 정책토론회에 발제자 및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K-콘텐츠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저작권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취지의 정책토론회로, 실제 영상산업에 종사하시는 관계자분들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새로운 디지털 시장과 관련한 저작권법의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김정현 변호사 (법무법인 창경)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