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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인지대 : 껌값과 금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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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의 일이다. 파산관재인이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하였는데, 1심, 2심 모두 소멸시효 완성으로 패소한 사건에 대하여 상고를 포기하겠다는 취지의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소송목적물 가액이 공시지가만 100억 원이 넘었으므로 파산관재인의 의견만 듣고 결정할 수 없어 판결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이었으나 소멸시효 기간이나 기산점과 관련된 최근 대법원 판례 경향 등에 비추어 보면 상고심에서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고, 적어도 패소하더라도 판례공보에 실릴만한 판시가 나올 사안으로 여겨졌다. 주심판사와 상의 후 관재인의 허가신청을 불허하고 상고를 제기하도록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인지대를 내야한다고 예금에서 인출하겠다는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지대가 7000만 원 가량이었다. 지금이라도 상고를 포기하고 추가비용을 아껴야 하나!! 파산회사는 현재 지역 주민들로부터 환경관련 피해배상으로 몇 백억 원을 물어달라는 소송 계속 중에 있는바,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갈 약 1억 3000만원 이상(인지대 7000만 원 + 우리 측 변호사비용 + 패소될 경우의 상대방 측 변호사 비용)을 잘못된 판단으로 날리는 것 아닌가? 걱정스러웠지만 승소가능성이 있어보였고 이미 상고하도록 한 사건을 중간에 원점으로 돌리기도 어려웠다. 그 후 파산관재인이 상대방이 우리나라 최대로펌 등 두 군데 로펌을 선임하였다고 하면서 그 대응을 위해 상고사건 전문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겠다면서 착수금지급 허가신청을 하였을 때, 우연히도 잘 아는 훌륭한 분으로 검토되어 와서 마음이 놓였다. 근래 대법관에 따라 심리불속행 비율이 90%에 육박한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걱정하며 달력에 심리불속행 만료일을 표시해두었고, 다행히도 만료일 저녁에 동료부장과 조용히 맥주 한잔을 먹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던 중 최근에 주심판사로부터 파기환송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동료부장과 함께 고기를 먹으면서 마음속으로 자축했다.

사실 동료판사들과 인지액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인지액이 적어서 소송을 부추기는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반면에 변호사 친구들과 만나보면 인지액이 적지 않아 많은 의뢰인들이 실질적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인지액에 관한 규정은 1990. 12. 31. 민사소송 등 인지법 제정이후 약 30년간 큰 변화가 없었는데 원칙적으로 소송목적의 값에 따라 0.5%에서 0.35% 사이에 역진제로 계산된다. 그리고 항소장에는 그 금액의 1.5배, 상고장에는 2배의 인지액을 낸다. 그런데 그 30년간 사회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소송제도도 어마어마하게 변화했다. 소송목적의 값과 상관없이 판결도출까지 들어가는 사법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원의 비용 역시 많이 달라졌다.

법원에서 상대적으로 노력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무변론이나 공시송달 판결이라고 해서 인지액을 별도로 감면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금전청구로서 소송목적의 값이 3000만 원 이하 사건의 당사자들은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이유기재가 원칙적으로 생략된 판결문을 받는 등 여러 면에서 통상의 재판에 비하여 열악한 사법서비스를 제공받는데도 그 인지액은 똑같다. 그리고 소가를 산출할 수 없는 재산권상의 소는 민사 및 가사사물관할에 관한 규칙에 따라 합의부 관할인데 소송목적의 값은 5000만 원이어서 그 인지대는 23만 원이다. 반면에 재산권상의 소로서 합의부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서는 소송목적의 값이 5억 원이 넘어야 하는데 이 때 납부해야할 인지대는 222만5000원이다. 한편 소송목적의 가액이 높다고 그에 들어가는 사법비용이 무한정 늘어나지도 않는데도 10억 원이 넘는 경우에는 그 비율은 0.35%로 고정되어 상한의 정함이 없다.

반면에 어이없게도 몇 조원짜리 회사가 파산신청을 하면 인지액은 이른바 껌값인 1000원에 불과하고, 회생절차개시 등을 신청하면 그 인지액은 3만 원이다. 위와 같은 회사의 파산사건, 회생신청 사건을 처리할 때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이 얼마나 큰지 법조인이라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참고로 자산규모 150억 원짜리 건설회사 하나가 최근에 회생절차를 졸업하였는데 관련 조사확정재판만 50여건 처리하였고, 관재인의 허가신청에 따라 허가결정을 한 것은 200여건 정도 되었다.

현재 당사자가 지출하는 인지대 등 사법서비스 비용은 법원이 실제로 제공하는 사법서비스의 질이나 내용과 별 관계없이 과거 일정시점에 별 고려 없이 정해 놓은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여러 실질적 측정과 계량화를 통하여 사건유형별로 제공되는사법서비스의 정도를 예측하여 인지액을 제대로 계산할 때가 되지 않았나한다. 동일한 인지를 놓고 제공자는 싸다고 생각하고 수요자는 비싸다고 생각하는 그 간극은 언제쯤 해결될까? (수천억 원짜리 기업 파산사건에는 인지대 1000원만 받고 진행하면서 100만 원짜리 대여금을 청구사건에 5000원의 인지액을 내지 않았다고 소장 각하한 판사가 나중에 대법관 후보자가 되었을 때, 내심 자신이 반대하는 세력의 추천으로 후보자가 된 것에 불쾌함을 감춘 정치인, 언론인 등이 자신의 몰이해에 바탕을 두고 법조 엘리트의 ‘이중잣대’라고 떠들면서 비난할 텐데, 후배 판사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법원 인지대 모순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권순건 부장판사 (창원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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