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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의 회고록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7-2)

4부 낙관(落款) ⑰ 장관이란 호칭을 남겨준 마지막 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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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29년간의 공직이 남긴 유물


법제처장 -Ⅱ

(1996. 12. 20. ~ 1998. 3. 3.)


 

나는 재임 기간 중 두 분의 국무총리를 모셨다. 내가 법제처장으로 임명될 당시의 국무총리는 이수성(李壽成) 씨였으며, 그 몇 개월 뒤에 고건(高建) 씨가 후임 국무총리로 취임하여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막을 내려 내가 법제처장을 그만둔 날 당시의 전 각료와 함께 퇴임했다.

국무총리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그의 재임 중 각료였던 사람들과는 퇴직 후에도 동료 의식을 고양하는 뜻에서 모임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수성 국무총리 휘하의 퇴직 장관들의 모임은 ‘민우회(民友會)’이고, 고건 총리의 경우에는 ‘문경회(文卿會)’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그 모임을 이어 오고 있다.

문민정부가 거의 끝날 무렵, 고건 총리께서 내게 이 모임의 적당한 명칭을 지어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기에 내가 ‘문경회(文卿會)’라는 이름을 지어 그 이름자를 고른 이유를 한 장의 문서로 만들어 드린 적이 있었다. 아무 말씀도 없던 터에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전,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모시고 전 국무위원이 참석한 고별 만찬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고건 총리께서는 김 대통령에게 퇴직 장관들의 모임을 만들었으며 그 이름을 문경회라 정하였다는 내용을 보고하면서 퇴직 후에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뜻을 피력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총리께서 나의 건의를 수용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문경회라는 이름을 지은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정부는 ‘문민정부(文民政府)’였다. 여기에서 글 ‘문(文)’ 자를 택하고, 그 정부의 각료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경(卿)’ 자를 골랐다. 예로부터 국정을 맡고 있던 고위 관료를 공경대부(公卿大夫)라고 부르기도 한 것처럼, ‘경’이란 벼슬을 뜻하는 것으로서 상대방에 대한 존칭으로 귀공(貴公)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문자이다. 이 글자의 본뜻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상서롭다는 의미를 지닌 글자이므로 그들의 모임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문자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 총리는 내가 써 드렸던 내용을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내가 법제처장직을 물러난 지 1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계절에 따라 1년에 너덧 번씩 이 모임이 이어져 오고 있으나, 그동안 문경회의 회원 중 유명을 달리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더러 생겨나고 있으니 얼마나 오래 이 모임이 이어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법제처장을 지낸 인연으로 몇 개의 유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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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 재직기념패 
<사진 = 송종의 장관 제공>

 

첫 번째는 국무위원 재직기념패이다.

나는 헌법상의 국무위원이 아닌 법제처장이었으므로 이 용어는 적절치 않다. 그러나 국무회의에 당연히 참석하여 발언할 권한이 있는 장관급 공직자인 내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다. 다른 마땅한 용어도 없다. 이 재직기념패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고건 씨와 그의 휘하 국무위원 및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장들의 연명으로 제작된 것이다. 정부조직법이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여러 번 개정되면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행정 각부와 국무총리 산하 중앙행정기관의 명칭이 대부분 바뀌게 되었으므로 내가 지금 보아도 좀 생소한 직명이 들어 있다.

위 패는 나의 재직기념패이므로 나의 직명과 성명 및 재직 기간이 나의 사진과 함께 패의 상단에 표시되어 있어서 문민정부 당시의 장관급 이상 행정부처의 공직자 24명이 각기 서명하여 제작되었다. 이 재직기념패 상단 정중앙에 적색 테두리로 된 국무위원의 배지 도형이 크게 부착되어 있고, 상단의 좌우에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두 번째는 국무위원 배지(badge)이다.

문자로 표시된 신분증은 아니나 신분증의 역할을 하는 물건이 있기에 여기에서 설명한다.

행정부처 차관급 이상의 정무직 공무원에 임명되면 그 신분을 상징하는 배지가 수여된다. 직경 약 1.5센티미터 정도의 원형 배지인데, 양복상의 왼쪽 깃에 꽂도록 제작된 것이다. 장관급과 차관급의 두 종류로 구분되어 있다. 노란 금색 원형 가운데 같은 색 양각(陽刻)의 무궁화꽃이 들어 있고, 그 사이의 색이 빨간색인가 혹은 검은색인가에 따라 직급을 달리한다. 적색(赤色)이 장관급 공직자용이고, 흑색(黑色)이 장관급이 아닌 차관급 이상의 공직자용이다. 영상매체인 TV 등에 나오는 정무직 공직자의 상의 좌측 옷깃에 꽂힌 이런 배지를 흔히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법제처장으로 임명될 때 적색 금배지 2개를 받은 바 있고, 지금 누구인지 기억에 없으나 어떤 사람으로부터 다른 1개의 배지를 선물로 받아 모두 3개가 보관되어 있다. 국무회의의 참석자 대부분은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이 배지를 달고 회의장에 들어간다. 이것은 회의장 준비 요원에게 그 신분을 알리는 의미에 덧붙여 국무회의 구성원 서로 간의 예의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법제처장으로 재직하면서 공무를 수행하는 동안 이 배지를 옷깃에 착용하였을 것이며, 다른 국무위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선물로 받았던 배지 1개는 순금이 틀림없고, 법제처장으로 임명될 때 정부에서 만들어 준 2개의 재질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3개의 배지 무게가 거의 같은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이 2개 역시 금배지로 짐작된다. 요즈음의 법제처장이 검은색 배지를 꽂고 다니는 것을 보니 좀 섭섭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재임 기간 이수성·고건 두 분 총리 모셔
함께한 각료 모임 명칭 민우회·문경회로
지금까지 계절 따라 연 3~4회 만남 지속
유명 달리한 분도 있어 언제까지 갈지…


법제처장 지낸 인연으로 몇 개 유물 남아
국무위원재직 기념패와 국무위원 배지
공직 떠나 5년 뒤 받은 청조근정훈장도
두 분 총리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감사


세 번째는 내가 공직을 그만두고 물러나 5년이 흐른 뒤에 2003년 2월 3일 받은 청조근정훈장(靑條勤政勳章)이다.

그 연월일이 암시하는 것과 같이 2003년 2월은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 정부가 끝날 무렵이었다. 나는 문민정부의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지 못한 채 공직을 물러났으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김대중 정부의 말기에 이르러 뜻밖에 이 훈장을 받게 되었다.

역대 정권이 그러하였듯이 대통령은 그 임기 말에 이를 즈음 자신이 임명하였던 장관급 각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 중의 국무위원 등 각료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수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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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말기인 1998년 하반기에 예기치 못한 IMF 사태가 터져 이 사태의 수습을 위하여 진력하다가 이를 매듭짓지 못하고 떠나는 대통령이 재직 중 임명하였던 각료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떠날 명분은 찾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그럴 마음의 여유 또한 없었을 것이다. 어느 각료라도 훈장을 받게 되었다면 국민의 따가운 눈총과 비난을 면치 못하였을 것임이 거의 틀림없다.

그러므로 김대중 대통령도 그 재임 기간 중 자신이 임명한 각료들에게 이런 훈장을 수여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임기를 앞두게 되었다. 문민정부의 각료를 제외한 국민의 정부 각료들에게만 훈장을 수여하자니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고, 그 각료들과 함께 이를 수여하자니 이 역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위 훈장증에 명시된 2003년 2월 초에 대통령실 직원이 우리 집을 찾아와 슬며시 놓고 간 큰 가죽가방을 열어 보았더니 위의 청조근정훈장과 훈장증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그 청조근정훈장은 말 그대로 ‘뜻밖에’ 받게 된 훈장이다. 따질 필요 없이 이 훈장이란 것은 공무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예이지만 받고자 욕심을 낸다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받지 않으려 해도 때로는 받아야 한다.

나는 검사로 재직 중에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과 황조근정훈장(黃條勤政勳章)을 받았으므로 세상을 살면서 다른 복이 어떠하였는지 스스로 평가할 수 없으나 훈장 받을 복만은 타고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내가 훈장 받은 것을 복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의 검사로 임관되어 오랜 기간 공직에 봉사한 사람치고 국가에 충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한 사람이나 있겠는가? 확고한 국가관과 투철한 사명감 없이 어떻게 하루인들 검사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점만은 검사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훈장을 받는 사람도 있고, 못 받는 사람도 있다. 훈장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세 번째 훈장이 뜻밖에 받은 훈장인 것처럼 검사 시절에 받은 두 개의 훈장 모두 뜻밖에 어쩌다 받는 훈장이다.

내가 마지막 공직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법제처장직을 물러나며 남긴 퇴임사의 끝 말은 다음과 같다.

“귀거래혜(歸去來兮) 영고무상(榮枯無常) 산수자한(山水自閑) 좌간부운(坐看浮雲).”

나의 공문행적에 관한 긴 글을 끝내며 세 분께 감사의 뜻을 표하려 한다.

이수성 제29대 국무총리님께서 재임 중에 나는 법제처장으로 기용되었다. 이 총리님께서는 1997년 3월 4일 퇴임하셨으므로 내가 그를 모신 기간은 3개월도 못 된다. 총리 퇴임 후 민우회의 장관 여러분을 부부 동반으로 모시고 대형버스를 빌려 내가 사는 이 산간벽지인 양촌을 찾아오셔서 나를 격려해 주셨다. 2005년 4월 27일자로 제작된 민우회 회원 방문 기념패를 주고 가셨다. 이 총리님, 감사합니다.

고건 전 국무총리님께서는 나의 법제처장 재임 중에 총리로 취임하여 나와 함께 문민정부가 끝날 때까지 재임하셨다. 미묘한 법률적인 문제가 있는 안건이라면 국무회의 안건 심의 도중 법제처장이 의견을 개진토록 한 후, 법제처장이 법률상 그렇다고 하니 그대로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말로 재치 있게 합의를 이끌어 내던 ‘행정의 달인’ 고건 국무총리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끝으로 나를 검찰총장으로 기용하지 못한 미안함을 늘 간직하고 계시다가 촌부에 불과한 사람을 법제처장으로 등용하여 만년에나마 장관의 호칭으로 불러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김영삼 대통령 각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시금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며 명복을 기원합니다.


2016년 1월 천목거사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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