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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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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빛의 순수는 모두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서 만나고… ’(She walks in beauty 중)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아름다운 시(詩)는 그의 준수한 외모에 더해져서 당시 숱한 여성 스캔들을 일으켰다. 마음 고생이 심했던 바이런의 부인은 문제의 원인이 그의‘시적 감수성’에 있다고 보고, 딸 에이다에게 수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쳤고, 결국 에이다는 저명한 수학자가 되어 최초의 해석기관(컴퓨터)을 고안했다고 한다. 그래도 아버지의 시적 감수성을 물려받아서인지 당시 에이다가 상정한 미래의 컴퓨터는 복잡한 계산처리기관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을 가진 인간의 두뇌 작용을 재현해 낼 수 있는 것, 작곡 등 창작활동도 가능한 것이었다고 하는데…

바이런이 가졌던 감수성 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합리성과 이성적 사고 능력이 중시되는 법의 영역에서도 감수성은 필요하다. 인간의 삶을 다루기 때문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Poetic Justice)에서 스토리텔링과 문학적 상상이 합리적 논증에 필수적인 구성요소를 제공해준다는 확신을 책 한 권에 길게 풀어서 설명하였다. 애덤 스미스도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에서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는 이타심의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사고와 감정을 상상해보는 공감 능력을 통해 결국 인간이 이기심도 조절할 수 있다고 보았다. 존 롤스도 정의론에서 그가 제시한 정의의 원칙은 결국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감수성, 정의감에 대한 인간의 능력 때문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초 법학은 어쩌면 바로 인간의 본성인 공감 능력과 도덕감이 결국 정의감과 연결된다는 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인간의 삶을 다루는 법률가에게 첫 출발지이자 지속적인 영양분이 될 수 있다.

카오스에 빠진 듯한 민주주의, 빈부 차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로 점점 더 양극화되어 가는 지금의 시대에도 인간의 감수성에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겐 ‘관심’과 ‘관용’,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관심과 관용은 두 가지 모두 타인의 상황과 감정을 상상해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에 기반할 때 가능하다. ‘관심’은 우리 모두가 각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삶을 전망할 수 있고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실제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서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관용’은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삶의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영위함에 있어서 어떠한 지배적 문화나 위계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고 가치의 다원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관심과 관용, 어감상 이미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베푸는 은혜 같은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 엎치락뒷치락, 우리가 관심과 관용을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때는 많을 것 같다. 관심과 관용으로 길고 긴 인생, 서로를 위한 덕을 쌓아보는 건 어떨까.


정인경 선임헌법연구관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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