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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놉티콘

[권석천의 시놉티콘] 공보관 오석준 vs 판사 오석준 vs 대법관 오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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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법부엔 질풍노도가 밀어닥쳤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명박 정부에 눈엣가시였다. 이용훈 코트(대법원)가 진보 성향으로 기울었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대법관 제청부터 주요 사건 판결까지 사사건건 충돌이 이어졌다. 당시 대법원 공보관으로 방패막이 역할을 했던 이가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이하 경칭 생략)다.


가장 큰 파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이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대거 재판에 넘겨지면서 불길은 법원으로 옮겨 붙었다. 2009년 2월 신영철 대법관이 임명되자 그가 원장으로 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 원장이 촛불집회 재판에 관여했다.” 대법원 진상조사단 조사 후 신 대법관은 이 대법원장의 엄중 경고를 받았다. “대법관께서 잘 판단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반문했던 오석준은 신 대법관이 그 해 연말에도 자리를 지키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강기갑 ‘공중부양’ 사건 무죄,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PD수첩 ‘광우병 보도’ 무죄…. 2010년 1월 ‘편향사법’ 논란으로 법원이 여당의 집중포화를 맞을 때도 오석준은 최전선에 서야 했다. “하급심 재판결과나 진행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하는 취지의 성명과 재판장 성향을 공격하는 보도는 사법권 독립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 판결 비판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 내가 기억하는 오석준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출세주의자도 아니었다. 여론과 법원의 틈바구니에 끼여 속을 끓이면서도 지극히 상식의 범주 안에서 말하고 움직였다.


이용훈 코트의 방패였던 그를
스스로 내린 판결이 막아 섰다
‘첫 대법관 부결’이어야 할까


판사는 스스로 내린 판결로 판결을 받는다고 했던가. 지금 대법관 후보자 오석준의 앞을 막아선 것은 ‘800원 해고’ 판결이다. 그는 800원을 횡령한 버스 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반면 85만 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검사의 면직 처분은 취소했다. 버스 기사 판결은 2011년이고, 검사 판결은 2013년이다. 검사 재판을 할 때 버스 기사의 얼굴이 스쳐가지 않았던 걸까. ‘법조 엘리트’의 이중잣대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도 빠뜨릴 수 없는 쟁점이다. 오석준은 윤 대통령 결혼식과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그가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이 긴장관계여야 할 대통령과 친분이 깊다면 재판 독립에 있어 우려되는 대목이다. 판사로서 사건 당사자나 다름없는 검사와 ‘불가근(不可近)’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경계했어야 할 일이다.


다만, 한가지 물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의 판결 이력이나 친분이 대법관이 되기에 결정적인 결격 사유인가.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 국회의 동의를 얻어 /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대통령과 협의를 거치지만 제청권자는 어디까지나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장이다. 지금까지 대법관에 대한 국회 동의가 부결된 사례는 없었다. 과연 오석준이 ‘첫 대법관 부결’ 케이스로 기록돼야 할 정도인 걸까.


분명한 것은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가 뭉개져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4일 김재형 전 대법관 퇴임 후 김 전 대법관이 있던 재판부의 사건 진행이 멈춰선 상태다. 대법관 공백 사태가 또다시 몇 달씩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석준이 보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과정을 거쳐서라도 국회가 가부 간에 자신들이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정한 절차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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