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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과 함께

[법의 신과 함께] 출생통보제는 첫 단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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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동은 출생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공적 기록에 올릴 수 있어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매우 당연한 듯이 보이는 이 명제가 현실에서는 의외로 사각지대의 그늘이 짙어 출생기록이 없는 아동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출생기록이 없는 아동이 생기는 원인은 한두 개를 딱 꼬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출생신고를 부모에게만 맡겨둔 채로 공적 개입이 부재한 것도 원인이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하지 않으면 출생신고 절차가 어려운 것도 원인이며, 미혼부는 친생모의 신원정보를 모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원인이고, 혼인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률상 남편이 아이의 부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엄격한 친생추정도 원인이며, 가족관계의 틀 안에서만 아동의 존재를 올릴 수 있게 편성되어 있는 신분기록제도도 원인이다.

이렇게 켜켜이 쌓인 복잡한 이유들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푸는 것이 맞는 순서일까. 문제가 복잡할 때는 단순하게 보는 것이 답일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원칙을 제시하면서도 다른 문제를 푸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사안을 먼저 풀어 가는 것이 해결의 올바른 순서이다.

신분기록에 관한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실체관계와의 부합이다. 법무사들은 가족관계등록 업무를 하면서 당사자들이 실체관계와 맞지 않는 기록을 바로잡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당장 힘든 점이 있어도 실체관계에 맞게 기록을 남기는 것이 결국에는 가장 후유증을 남기지 않고 당사자가 고생을 덜 하는 길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출생기록 없는 아동 곳곳에 존재
원인은 말하기 어려울 정도 복잡
‘출생통보제’는 문제해결 시발점
정부·의료계 조속 타협점 찾아야


출생통보제는 아동의 출생신고의무를 부모에게만 지우던 것을 의료기관과 지자체에도 출생등록의무를 부과하여 출생기록의 실체적 진실에 더 한발짝 접근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구체적으로 의료기관이 아동의 출생사실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고, 지자체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확인되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출생신고에 대한 공적인 개입을 강화했다는 점에서도 진일보한 것이다. 이미 대법원 판결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가진다"고 천명하였듯이 국가는 아동의 출생등록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반영한 제도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출생통보제 법안이 지난 3월에 정부입법안으로 발의되었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직접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의료계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인데 의료계가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도 일응 수긍이 가는 면이 있으므로 현명한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시스템을 활용하자는 것에 정부와 의료계가 접근하고 있는 만큼 조속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미등록아동의 현실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 미등록아동의 현황을 파악하여 발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정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처럼 미등록아동의 현황파악이 쉽지 않다 보니 출생미등록 아동에 대한 많은 논의는 추측에 기반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해결방법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추측이 아닌 정확한 현황의 파악이 필요하다. 출생통보제는 현실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복잡한 출생등록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첫단추가 될 것이다.

출생통보제의 시행과 출생등록을 가로막는 제도의 변화가 이루어지까지는 시간적 간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출생통보제가 시행되어도 미혼부자녀 출생신고의 어려움이 당장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단기간에 출생신고가 어려운 아동의 보호를 위하여 그 간격을 메꿀 수 있는 보완장치도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현재 출생신고 전에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임시로 부여하는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적극 활용하는 방법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오영나 법무사(대한법무사협회 부협회장·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