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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놉티콘

[권석천의 시놉티콘] 논쟁은 죽고 잡담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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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이다. 2012년 논설위원 발령을 받고 가장 좋았던 것은 매일 열리는 사설(社說) 회의였다. 다음날 신문의 사설을 정하는 이 회의에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논쟁이 전개됐다. ‘오늘의 이슈’들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놓고 팩트와 논리로 중무장한 전투가 이어졌다. 20년 넘게 전문성을 갈고 닦은 베테랑들이어서 한마디 한마디가 촌철살인이었다. 회의 준비를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날 선 물음에 베이지 않을까’ 늘 조마조마했다.

오전 10시 반쯤 시작되는 회의는 12시가 다 되어도 끝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오늘은 이 주제로 사설을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 사설을 어떻게 씁니까?” “아니, 못쓰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강 대 강으로 맞붙었다. 고성이 몇 차례 오가고, 손으로 테이블을 치기 시작할 때쯤 논설실장이 스푼으로 빈 찻잔을 두드렸다. 진정들 하시라는 신호였다.

저마다 생각은 달랐지만 ‘글쟁이’라는 자긍심은 다르지 않았다. 지면에 칼럼이 실린 날이면 “잘 읽었소” “오늘 글 좋았어” 같은 반응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떤 날은 회의에서 공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법조 담당 논설위원이 그런 식으로 쓰니까 논조가 이상해지는 거 아닙니까?” 그럼에도 그를 괜찮은 선배로 본 것은 직업정신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누구 면전에서건 거침없이 말했고, 스스로 취재한 사실에서만큼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천생 글에 살고 글에 죽는 문사(文士)들이었다. 마감이 끝나고 해질 무렵이면 “석양주(夕陽酒) 한잔 하자”고 삼삼오오 나갔다. 대개는 골뱅이 소면에 소맥이었다. “권형. 대통령 기자회견 어떻게 생각해?” “오늘 나온 OOO 칼럼 읽어봤어?” 또 다른 토론과 배움의 장이었다.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1주일에 사설 두세 개에 칼럼 한 개씩을 넘겨야 했다. 그래도 가슴이 뿌듯했기 때문일까. 가끔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치고 받던 그 시절이 그리울 줄이야
지금은 같은 편끼리 같은 얘기 반복
다른 생각들이 부딪힐 순 없는 걸까


또 하나, 그 시절이 떠오르는 이유는 논쟁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논쟁은 구성의 다양성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소수라도 다섯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는 돼야 발언의 공간이 확보된다. 혼자여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면서 설득하려는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나도 설득 당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격조와 품위도 필요하다. 소모적인 감정싸움으로 치닫지 않게끔 하는 최소한의 프로토콜이다.

2022년 한국 사회를 보면 논쟁은 죽고 잡담만 무성하다. 단톡방과 SNS와 유튜브에선 비슷한 성향들끼리 군락을 이뤄 같은 화제, 같은 생각으로 결속을 다진다. 이를테면, A가 주장을 꺼내면 B가 살을 붙이고 C가 시중 우스갯소리로 반대진영을 비아냥댄다. 주제가 거창해도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지 않는 한 잡담은 잡담일 뿐이다. 정책 토론의 올림픽 경기장이 돼야 할 정치권에서도 논쟁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길게 논의하지 않는다. 눈 가린 경주마처럼 밀어붙이고 치받기에만 몰두한다.

논쟁다운 논쟁은 사회를 한 단계 올려놓는다. 멋진 공격과 수비가 어우러진 한판의 승부는 지켜본 사람마저 한 뼘 성장한 듯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 과정을 거쳐 쟁점이 분명해지고, 논리가 선명해지며, 입장이 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건 한데 모여 논쟁하는 일인지 모른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이야기 주변에서 시시덕거리는 게 아니라.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