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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과 함께

[법의 신과 함께] 아직 못 해준 것들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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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침 뉴스를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헤드라인을 만났다. ‘아직 못 읽은 책이 많은데… 보육원 출신 새내기 대학생의 극단적 선택’. 나도 모르게 클릭해서 기사 전문을 읽어보았다. 기사 내용은 짧았다. 옥상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장면이 CCTV에 잡혔다는 점, 타살의 정황은 찾을 수 없었다는 점, 보육원 시설을 퇴소하면서 부담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는 점, 쪽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낙서를 남겼다는 점 등을 볼 때 자살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쪽지에 끄적였다는 저 문장에서 어딘지 삶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듯했다. 그래서 더 먹먹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쉬움을 꺾어버릴 만큼의 외로움, 괴로움, 막막함이 얼마나 컸을지 느껴지는 듯 해서.

올해 여름날 중에서도 꽤 더웠던 어느 일요일, 자립준비청년의 멘토로 활동하는 분의 요청을 받아 근교의 보육원 중 한 곳에 노동법 교육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아마 이번에 가시는 곳이 그동안 가보셨던 곳 중에서 좀 시설이 좋지는 않을 거에요. 대중교통도 잘 다니지 않아서 차량으로 이동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그래도 곧 아르바이트 시작하는 친구도 있으니까 부탁 좀 드릴게요.” 안내를 받으면서, 나는 여상히 알았다고 답했다. 지방재판도 다녀봤고, 다른 보육원에서도 강의를 몇 번 다녀왔으니까 이번 강의도 그런 경험의 연장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반만 맞았다. 아이들을 만나서 노동 관련 법률상식, 분쟁사례를 설명해 주는 일련의 과정은 평소와 비슷했지만, 평소와 다른 점도 있었다. 이번에 방문한 시설은 유독 외진 곳에 있었는데, 마을버스 정류장에서도 풀숲이 우거진 시골길 20분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마을버스 배차간격도 40분 이상이어서 시설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시설 밖에서 방문하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지 나를 신기한 듯한 눈망울로 바라보았다.

자립 준비하는 보육원 청년들
지금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취업을 위한 실무교육 이전에
사회 어른들과의 대화와 교감


그래서인지 그날 만난 학생들에게 유독 마음이 더 쓰였다. 평소보다 더 에너지를 들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권리,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대처 방법, 간간이 문제가 되었던 편의점 도시락 취식 문제(‘절도’로 보아 벌금형이 선고된 2심 판결이 있기도 했다) 등을 언론 보도자료, 자립준비청년들의 후기에서 본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지루할 법도 한 2시간의 강의를 꽤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이렇게 강의할 때는 늘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상존한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고무적인 마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마음. 아마 회의적인 마음이 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내가 열심히 전달하려고 한 내용들도 아이들에겐 소화되지 않거나, 기억나지 않거나, 활용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강의를 지속할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일전에 자립준비청년의 멘토로 활동하는 분과 나누었던 대화 덕분이었다.

“오늘 강의가 혹시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죠? 아이들이 정말 뭘 필요로 하는지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망설이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어요. 내가 혹시 무신경한 말을 해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 않을까? 내가 되게 행동을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번 해 봐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런 걱정 때문에 아이들과 거리를 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의 어른들과 시선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배워갈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때 들었던 몇 마디 말에 용기를 얻었다.

어쩌면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 또는 이제 막 자립을 한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활에 필요한 재원, 직업을 얻기 위해 필요한 교육, 그리고 법률·재무 교육만큼이나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디는 청년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매년 약 2500명 씩 자립을 시작하는 청년들의 지원정책에 그런 사회적 자원에 대한 안배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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