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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의 회고록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3)

3부 채색(彩色) ⑬오대양의 파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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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위명지지(萬代威名之地)’에 세운 대전 검찰청사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1991. 4. 18. - 1992. 7. 28.)


 

1991년 4월 18일 오전 11시, 대전지방검찰청 대회의실에서 나의 취임식이 열렸다. 이 취임식장에서 내가 전 직원에게 말한 취임사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 날짜 검찰 업무일지에 기재된 내용을 살펴보니, 일곱 줄의 메모로 적혀 있을 뿐이다. 전임 검사장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뜻, 내가 바라는 세 가지 꿈, 그리고 전 직원의 동참과 협조를 바라는 내용 등 세 가지 항목이다.


내가 바라는 꿈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충절과 예의의 고장'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항상 염두에 둔 검찰권의 행사.

2)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업무 처리.

3) '복생어청검(福生於淸儉), 명생어화창(命生於和暢)'의 뜻에 맞는 공사(公私) 생활.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의 청내 행사는 물론, 지역 행사에서 내가 한 말은 문장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다만 내가 미리 작은 메모지에 적어 연단에서 보았던 그 메모지는 업무일지에 전부 남아 있다. 다시 옮겨 쓴 것이 아니라 그 메모지에 풀칠하여 수첩에 붙여 놓았다. 업무일지 여기저기에 수십 개의 메모지가 붙어서 너덜거린다.


다만, 부임 몇 개월 뒤에 일어난 속칭 오대양 사건(주임검사 송해은)은 희대의 사기꾼인 사이비교단의 교주가 관련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서 만인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으므로 이 사건의 처리 전반에 관한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사건은 그때 발생된 후 다음 해 1월 하순에 1심의 선고가 이루어진 사건이어서 오랜 기간에 걸쳐 대전지검의 전 검찰력이 이 사건의 수사와 공판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사건에 관한 모든 경과를 여기에 적을 필요는 없다. 2008년에 우리 검찰 스스로가 이 사건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검찰이 수사 처리한 20대 사건의 하나로 선정하여 이미 검찰의 정사(正史)에 그 내용을 자세히 정리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발생 후 수사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몇 가지 점을 수사 낙수 형태의 글로 적어 두었던 글이 있다. 「오대양진혼곡」이란 제목의 글로 이미 오래전에 『검찰동우』지에 전문이 게재되었고(통권 제27호), 작년에 발간된 나의 문집 『밤나무 검사의 글 자취』에도 심심풀이란 두 개의 글 중 하나로 실어 놓았음을 참고로 적어 둔다.


이 사건 이외에 내가 심혈을 기울여 처리한 일이 하나 더 있다. 즉 대전고·지검 종합청사의 건립 추진에 관한 것이다.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의 개정으로 1992년 9월 1일에 대전고등검찰청이 새로 발족하게 되었으므로 그 사무실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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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도 대전지검 구청사   <사진=박현철 대검찰청 대변인 제공>

 

1991년 당시에도 대전지방검찰청 자체 건물이 비좁아 건물 4층에 조립식으로 건물을 증축하여 특별수사부가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 임시 건물 역시 수용 한계를 넘어서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야 할 처지였다. 이 본관 건물이 1972년 12월 26일에 대전시 중구 선화동 188번지 세워진 구 대전지방검찰청 청사였다. 이 검찰 청사가 준공될 당시의 기록을 보면, 그 규모는 대지 1만2800㎡(3896평), 연면적은 4088㎡(1291평),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건립된 건물이었다.


이런 자세한 내용을 내가 여기에 옮겨 적을 수 있는 것은 내게 정확한 사료(史料)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임 중에 완성된 『대전지방검찰사(1992년)』이다. 내가 검사장으로 부임하여 보니, 전임 검사장께서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으나 이 일을 매듭짓지 못한 채 대검으로 전보됐다. 나는 『법무부사』를 발간한 추억을 떠올리며 나의 재임 중에 반드시 대전지방검찰청의 역사를 정리한 책자의 발간을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그 일에 박차를 가할 무렵 오대양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에 전 검찰력을 집중하면서도 나는 이 책의 편집과 발간에 매달려 내가 중앙수사부장으로 전보되기 전에 이 일을 끝냈다. 내 이름으로 의미 있는 발간사를 써서 책 서두에도 실어 놓고, 책을 발간하여 필요한 곳에 모두 배포했다. 내가 공직 퇴임 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라는 두 글자에 대한 변함없는 나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38억 년이나 된다는 지구의 역사 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또한 그들만의 인간 역사를 만들며 오늘에 이르렀다. 문명의 발전 과정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행동 양식과 사고의 영역은 어떤 틀 속에 있다. 이것이 곧 인간의 역사이다. 사람은 이런 역사 속에서 삶의 지혜를 다시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노안을 밝히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둔산 지역에 새로 건축된 현재의 대전 검찰청사는 1995년 12월 30일에 착공하여 내가 법제처장직을 물러난 이후인 1998년 11월 11일에 준공된 웅장한 건물이다. 대전시 서구 둔산동 1390번지에 들어선 검찰청사는 지하 2층 지상 10층의 청사 본관만 하더라도 3만2157㎡이고, 구치감, 후생관, 구직원숙소, 신직원숙소 및 직장어린이집 등 다섯 개의 부속건물을 합한 연면적이 3만3779㎡에 달하는 규모다.

 

91년 당시 대전지검 청사는 협소한 3층
4층에 조립식 건물 증축 특별수사부 사용
이 건물마저 수용 한계 넘어 절박한 처지
대전고검 발족 계기로 새 건물 신축 추진
대전지법 등 적극 지지로 둔산 부지 확정

부지 절반 나눠 동쪽은 법원, 서쪽은 검찰
95년 12월30일 착공 98년 11월11일 완공
10층 본관 건물에 다섯 개의 부속건물로
정부 대전청사 한가운데 우뚝 자리 잡아
스카이 뷰로 보면 ‘만대위명지지’ 터 실감

 

이 건물의 건축 기간이 그러하였을 뿐, 건물이 들어선 부지의 선정과 건립 계획은 나의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시에 확정된 것이다. 법무부 검찰국과의 협의를 계속 진행하면서 추진된 검찰의 만년지대계(萬年之大計)의 하나였다.


이런 일이 검찰만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수는 없었으므로 법원과는 물론, 행정당국과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했다. 당시의 대전지방법원 원장은 이재화 씨였다. 법원과 검찰청 청사의 부지 선정을 내게 전적으로 위임하다시피 하면서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 주셨다. 두 기관과 협의하며 현재의 대전 고·지검청사 부지를 확정했다. 지금 인터넷을 검색하여 스카이뷰로 법원 검찰 종합청사 전경을 내려다보니 이는 옛날 청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히 만대위명지지(萬代威名之地)에 건립된 웅장한 건물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대전시의 둔산 도시계획 전반을 검토하여 검찰청과 법원의 청사가 들어설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현장 답사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 결과를 법원장에게 수시로 보고하면서 심사숙고하여 최고의 입지를 골라 법원 검찰의 종합청사 부지를 확정했다. 거의 정방형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대로를 접한 땅이다.


이 터의 정남쪽 직선거리로 27㎞쯤 되는 곳에 큰 산 하나가 우뚝 서 있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달리면서 세워 놓은 우리나라의 명산 제7봉인 덕유산으로부터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錦南正脈)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대둔산이 바로 그 산이다. 이 산에서 대전 시내를 관통하며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 세 개가 있다. 모두 금강으로 흘러드는 물이다. 동쪽의 물줄기인 대전천과 유등천은 갑천과 합치기 전에 한 물줄기가 되고, 갑천이란 물은 서쪽에서 홀로 흘러 내려오다가 유등천과 합친다. 이 갑천과 유등천이 물을 섞는 지점에 큰 땅을 만들어 내니, 이곳이 곧 둔산이라는 대전의 신도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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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둔산동 검찰청사    <사진=박현철 대검찰청 대변인 제공>

 

이 두 물을 좌우로 거느리며 한 줄기의 산맥이 길게 이어지면서 높이를 낮추어 간다. 그 산줄기가 바로 둔산 신도시 지역의 내룡(來龍)이다. 이 지역은 그런대로 꽤 넓은 땅이긴 하나 대둔산으로부터 내려오는 산줄기가 정기봉을 이루기 직전에는 갑천과 유등천은 서로의 간격을 급히 좁혀서 그 폭이 1㎞ 남짓하다. 그러므로 물줄기의 형태로만 보면 이 둔산 지역이라는 땅은 조롱박처럼 보이기도 하며, 어떤 종(鐘)의 모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산줄기가 대둔산의 마천대(879m)로부터 시작되어 안평산(472m), 명막산(332m), 해설이산, 정기봉, 도솔산 등의 기봉(起峯)을 이루며 몸을 서서히 낮추어 오다가 둔산 지역에 이르러 위 두 하천이 합치는 곳에 큰 터가 마련됐다. 이 지역에 정부 대전청사 등 관청 건물이 모두 들어서 있다. 그 한복판에 법원과 검찰의 청사가 세워진 것이다.


종의 한복판이 종심(鐘心)이므로 소리가 없을 수 없고, 조롱박의 한가운데는 소리가 증폭되는 곳이다. 바이올린이나 만돌린을 연상하면 그 이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지세가 위와 같으므로 나는 그 형국을 ‘만대위명지지(萬代威名之地)’라고 이름한다.


이 땅을 절반으로 나누어 동쪽은 법원, 서쪽은 검찰청의 부지로 정했다. 두 건물 모두 좌향이 정남향인 자좌오향(子坐午向)이므로 전형적인 동사택(東四宅) 건물이다. 정문은 따로 설계하여 서로 다르나 모두 오문(午門)이어서 양택풍수(陽宅風水)에 어긋남이 없다. 중남수(中男水)와 중녀화(中女火)가 그 좌향이라, 젊은 남녀가 짝을 이루어 운우의 조화를 만들어 낼 것인즉, 굳이 그 장래가 어떻다고 예측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대위명지지에 세워진 자좌오향 오문의 대전(大殿). 법원과 검찰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그러나 후인에게 이른다. 내가 늘어놓은 이런 말은 모두 양택풍수의 이론에 빗댄 췌언(贅言)이다. 사람 사는 집이 복가(福家)인지, 그 땅이 명당(明堂)인지는 하늘이 미리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결국 그 땅과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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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을 떠난 다음, 대전지방검찰청 간부의 이름이 연명으로 새겨진 1992년 7월 28일자 나의재직기념패가 대검 중앙수사부장실로 전달되었다. 그 기념패에 새겨진 명단은 차장검사 유재성 등 검사 17명, 사무국장 이계승 등 검찰사무직 9명이다.



<정리=박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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