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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그 말을 국민들이 믿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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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8년 전 얘기다. 당시 로스쿨 입시에 대해 비판이 많았다. 절차 측면에서는 정성평가 비중이 높다는 점, 결과 측면에서는 합격자의 연령이 낮고 명문대 출신이 많다는 점이 지적됐다. 정성평가 비중이 높다 보니 부유층이나 명망가 자제들이 쉽게 입학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정성 요소를 빼고 정량 요소만으로 평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당시 서울대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해 봤다. 전년도 지원자 중 정량 점수(리트점수와 학점)만으로 가상의 합격자들을 가려내고, 그 가상합격자들과 전년도 실제 합격자들을 비교해 본 것이다. 그 결과 가상합격자들의 평균연령이 오히려 더 낮았고, 특목고와 8학군 소재 고교 졸업생들의 비중은 가상합격자 군에서 더 높았다. 실제 합격한 탈북자, 장애인 등은 가상합격자 군에 들지 못했다. 20대 초반의 싱싱한 머리로 집안의 후원을 받으며 학점 관리와 리트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학생들이 정량 측면에서 유리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 무렵 교육부와 로스쿨 입시 담당자들 간에 간담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나는 위 조사 결과를 말씀드렸다. 정량 강화는 입시의 투명화에 기여하겠지만 다양성 확보에는 역행할 수도 있겠다는 뜻과 함께. 그랬더니 교육부 고위 공무원께서 한심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아니, 그 말을 국민들이 믿겠습니까? 객관적인 정량 기준으로 뽑으면 특목고와 강남 출신이 늘어나고 합격자 나이가 더 어려진다는 걸 국민들이 믿겠냐고요.”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그 말을 국민들이 믿어줄 거라고, 또는 언론이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게 한심하다는 취지 같았다.

로스쿨 입시 업무가 편해지고
‘입시 불공정’ 비판도 줄었지만
정량 위주로 줄 세우는 것만이
국민이 믿어주는 공정일까


어쨌든 그 후 로스쿨 입시에서는 정량평가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블라인드 평가의 도입으로 자기소개서에는 지원자의 출신학교를 추측할 수 있는 기재가 금지되고, 가족의 직업에 관해서는 사업, 공무원, 노동 등 포괄적인 언급까지 모두 금지됐다. 가정환경이나 성장배경에 관한 소개도 제한된 셈이다.

입시업무는 편해졌다. 예전에는 서류심사를 맡은 교수들끼리 자기소개서와 성적표의 이면을 읽어내려 고심을 거듭하며 밤이 깊도록 의견을 나누곤 했지만, 이제는 정량점수로 큰 줄기가 가려지고 자기소개서에는 별 내용이 없으니 그럴 필요가 적어졌다. 거짓 자기소개서에 속을 위험도 적어졌다. 입시의 예측가능성도 높아졌고 입시 불공정에 대한 비판도 수그러졌다. 우려했던 부작용은? 장학금 신청자가 줄어드는 걸 보니 유복한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 같지만 블라인드 선발이니 잘 모른다. 특목고와 8학군 소재 고교 졸업생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이제 출신고교는 못 밝히게 하니 잘 모른다. 잘 모르니 마음도 편하다.

하지만 지난주 입시설명회에 몰려든 학생들을 보니 억누르던 의문이 다시 비집고 올라온다. 서류심사를 맡은 교수들이 자기소개서를 돌려 읽으며 밤늦도록 토론하고 고민하던 그 열정은 불공정한 것이었을까? 정량 위주로 줄 세우는 것만이 국민들이 믿어주는 공정일까? 오히려 그것이 구조화된 불공정을 고착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천경훈 교수 (서울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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