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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론스타 중재판정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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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론스타 사건에 대한 중재판정이 내려진다. 져도 그렇고, 특히 이기더라도 안도하고 말일은 아니다. 한국 정부는 이 정부 저 정부 할 것 없이 론스타 중재와 같은 투자조약중재를 이미 굳어진 제도로 보고 여기에 상당한 노력과 예산을 쓰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국제표준이라는 식의 막연한 견해가 널리 퍼져 있고,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필요하다면서 이런 견해를 선도하고 옹호하는 그룹이 있다. 우리는 법치주의에 세뇌된 사람들이라 법이라며 들이대면 그 자리에서 껌벅 죽는다. 아예 따져 보길 포기한다. 더구나 이리저리 설켜 있어 여러 단계의 생소한 개념을 차근차근 밟고 나서야 겨우 뭔가를 볼 수 있을 터인데, 법도 그냥 법이 아니라 국제법이라 하니, 사람들은 정부와 전문가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하고 만다. 이것은 곤란하다. 정부 관리와 전문가가 이바지할 데가 분명히 있겠지만, 그들에게만 맡겨 둘 일이 아니다.

론스타 중재의 경우 지면 수조 원의 돈을 물어줘야 하는데, 변호사 비용, 중재 비용으로 수백억 원의 돈을 써가며 10년째 싸우고 있다. 투자조약중재는 건(件)마다 이렇다. 그러니, 이것이 무엇이고, 대체 무슨 사연과 연유로 무슨 소득과 무슨 소용이 있어 이러고 있는지 국민은 소상히 알아야 한다. 론스타 사건의 중재판정이 내려지면, 적어도 잠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게 분명하다. 투자조약중재와 그 근거를 제공하는 투자조약에 대하여 차분히 따져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글의 목적은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보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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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중재는 어떤 사건인가? 미국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사모펀드회사인 론스타는 벨기에에 8개, 룩셈부르크에 1개 모두 8개의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운다. SPC라는 것은 실제 일하는 사람도 물적 시설도 없이 법적으로 그리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종이 회사라는 말인데, 론스타는 이들 8개의 종이 회사의 이름으로 2003년 10월 한국에 있는 외환은행 주식 51%를 취득하였다가, 2012년 2월 그 보유주식을 매각하여 상당한 투자수익을 실현하였다. 곧이어 2012년 12월 10일 이들 8개의 벨기에·룩셈부르크 국적의 종이 회사를 청구인으로 하여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양자간투자조약에 근거하여 한국정부를 상대로 43억7,86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중재를 제기하였다.

무엇이 심판을 받고 있는가? 론스타의 소장을 보자.[1]

많은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으로는, 투자자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의무는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고, 오로지 부차적으로만 상업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역사적인 이유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을 의심한다. 그 결과 많은 한국 사람들은 기질적으로 외환은행에서의 론스타 역할을 질시할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 노조, 그리고 언론기관이 론스타에 대하여 공공연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국회의원 나경원은 공공연히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의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국회의원 최경환은 마치 거래가 조작된 걸 암시하여 2003년 외환은행 인수는 헐값매각이라 부르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배경에 있는 음모를 밝힌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금융감독기관에게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봉쇄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하여 (국회에서) 금융관계 법률이 개정되었다.

감사원이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감사를 시작하여 줄줄이 소환장이 발부되었다.

대검찰청은 2003년의 외환은행 인수와 곧이어 이루어진 외환카드 합병을 둘러싼 의혹에 대하여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하였다.

대법원은 (론스타 코리아의 대표) 유회원이 (고등법원에서 받은) 무죄판결을 파기함으로써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의 인수신청에 대하여 그 결정을 더 미룰 수 있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금융감독기관은 일반대중과 정치적 역풍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비 상태에 빠졌다. … 금융위원회는 하나금융의 (론스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환은행 지분 인수 승인신청을 거부하였고, 론스타를 처벌하라는 일반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억지로 론스타가 매각가격을 낮추는 데 동의하도록 만든 연후에야 비로소 승인해 주었다.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론스타를 처벌하라는 요청 … 에 반응하여 한국의 정치적 힘은, 표적 입법 또는 소급 입법을 통해서라도, 론스타의 투자에 세금을 부과하라고 요구하였다.

국세청은 한국-벨기에 조세조약의 규정을 적용하기를 거부하였다.

위에서 인용한 것은 론스타가 중재에서 주장하는 바를 부분부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요지는, 폭도와 같이 불법을 자행한 한국 국민, 시민단체, 언론기관, 국회의원, 국회, 감사원, 대검찰청, 대법원, 금융위원회, 국세청의 행위를 심판하여 달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론스타 중재사건의 심판대상이다.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양자간투자조약에는 상대국 투자자에 대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완전한 보호와 안전,”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대우의 금지” 등의 문구가 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무해(無害)한 선언으로 보이는 이들 짧고 애매한 선문답 같은 문구가 판단의 기준이다. 판단의 기준이 이런 선문답이다 보니, 아무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투자조약중재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도 투자조약중재의 예측 불가능성과 일관성 결여는 모두 시인한다.[2]

누가 판단하는가? 론스타 중재의 판정부는 3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변호사 또는 대학교수로 민간인들이다. 혹시라도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라는 국제기구가 판단하는 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잘못 아는 것이다. ICSID는 중재기구로 이들이 하는 일은 중재절차에서 행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민간인인 중재인들이 판단한다. 이들은 ICSID로부터 급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인 한국 정부와 론스타로부터 상당히 괜찮은 보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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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투자에 관한 국제법의 일반원칙은 무엇인가? 미국과 영국은 서로 막대한 투자를 한다. 2020년을 기준으로 하여 미국 투자자들이 영국 내에 투자한 돈은 4,792억 파운드, 영국 투자자들이 미국 내에 투자한 돈은 3,999억 파운드에 달한다.[3]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한 현상일 터인데, 영국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와 영국 정부 사이에, 미국에 투자한 영국 투자자와 미국 정부 사이에 국가의 공권력 행사를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은 숱하게 있다. 그런 분쟁은 어떻게 해결되나? 외국인투자자는 투자유치국의 법원에 구제를 호소할 수 있고, 그것으로 끝이다. 이것이 국제법의 일반원칙이다.

학교에 다닐 때 국가의 3요소를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국민, 영토, 주권이 그것이다. 국가는 자기 영토 내의 일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갖고, 그걸 주권이라 한다.[4] 가수 유승준을 보면 알지만, 외국인은 남의 나라에 그냥 막 들어갈 수 없다. 입국을 거부당해 억울하다고 생각해도 미국 시민 유승준이 한국에 들어오려면 호소할 데라곤 한국 법원밖에 없다. 일단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법에 따라야 한다. 브리트니 그라이너는 미국 여자 프로농구 선수다. 그녀는 미국프로농구가 쉬는 동안에는 러시아 리그에서도 활약하는데 러시아 입국 절차를 밟던 중 1그램 미만의 대마초 기름이 그녀의 가방에서 발견되어 체포되었고 재판에 넘겨져 9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정부는 불법감금이라 하고 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고, 국제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면 러시아 국내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 국가의 주권에 따르라는 게 국제법의 일반원칙이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남의 나라에 마음대로 들어가 투자할 수 없다. 받아들이는 국가가 정한 요건과 절차를 따랐을 때 비로소 허용된다. 일단 들어오면 그 국가의 법과 질서에 따라야 하며 거기 사는 사람들과 다른 특별대우를 요청할 수 없다.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 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다가 그 국가와의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그 분쟁은 개인 대 국가의 국내 분쟁으로 재판의 권한은 그 국가의 법원에 있고, 그 재판에 적용될 법은 그 국가의 법이다. 국가는 주권을 보유하고 자국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분쟁에 대하여 재판의 권한을 독점하므로 외국인이 남의 나라에 들어와 할 수 있는 요구는 그 최대한이 그 나라의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해 달라는 것에 그친다.[5]

원칙이 그러함에도, 어떠한 연유로 우리에게는 정부에 전담부서를 두어야 할 정도로 론스타 중재사건 같은 일이 줄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변호사 비용, 중재 비용으로 쓰고, 또 질 때 물어주려고 막대한 예산까지 비축하여 두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 정부가 국제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일이 처리되도록 그냥 놔두지 않고, 일반원칙에 예외를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하였기 때문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므로, 반복하자. 한국 정부가 예외를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하였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1974년 최초로 그러한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해 10월 네덜란드와 12월에는 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동맹과 체결하였다. 이때 체결된 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동맹과의 조약은 그 후 2006년 12월 12일 체결되어 2011년 3월 27일 발효된 새로운 조약으로 대체되는데, 론스타 중재는 바로 이 조약에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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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논의를 진전하기 전에, 서울대학교 석광현 교수는, “투자중재에 관한 우리 용어는 혼란스럽다.”라고 하니,[6] 먼저 용어를 정리하자.

론스타 중재는 벨기에·룩셈부르크 국적의 회사가 한국과 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동맹 사이에 체결된 조약에 근거하여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것으로 이러한 중재를 두고 필자는 외국 문헌에서 보이는 사용례를 따라 투자조약중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같은 뜻으로 투자중재, 국제투자중재, 투자자-국가 중재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들 용어는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제기하는 중재라는 점에 초점을 둔 것으로 그 근거가 조약이라는 점이 드러나 있지 않다. 국제법의 일반원칙으로 외국인투자자는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아무런 권리도 없지만, 국가가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그 예외를 만들 수 있다. 첫째는 미국 석유회사 Texaco가 1955년 리비아 정부와 사이에 석유채굴을 위한 양허계약을 체결하고 그 양허계약에 둘 사이의 분쟁을 중재로 해결하기로 하는 중재조항을 둔 예와 같이, 외국인투자자와 투자유치국 사이에 체결된 개별적인 구체적인 투자계약에 중재조항을 두는 경우이다. 둘째는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조약으로 만드는 경우이다. 이 두 경우를 아우르는 용어로 투자중재, 국제투자중재, 투자자-국가 중재 등의 용어가 사용되는데, 이 둘은 하늘과 땅처럼 서로 다르다.

외국인투자자와 국가 사이에 체결된 투자계약에 의한 중재의 경우를 보자. ① 외국인투자자와 투자유치국 서로 각자 계약 위반을 이유로 상대방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②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외국인투자자는 그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에 한정됨은 물론이다. ③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범위도 그 계약에 관한 분쟁에 제한된다. ④ 판단의 기준도 계약당사자의 권리 의무를 상세히 규정한 계약이 있고, 그 계약에 준거법에 관한 규정이 들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⑤ 국가가 재판권(주권)을 양보(포기)하는 것이지만, 구체적 사안을 두고 단타성으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약에 근거하여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제기하는 중재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비교를 위해 같은 번호를 쓰면, ① 외국인투자자만이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다. ②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외국인투자자는 조약의 체약상대국 국민(회사도 포함한다)이기만 하면 누구나 다 포함되어 불특정 다수이다. ③ 특정 계약의 위반 여부가 아니라, 투자유치국의 공권력 행사 전반에 대한 것이다. ④ 조약에 들어있는 판단의 기준은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라는 식의 몇 마디 경구(驚句)밖에 없다. ⑤ 불특정 다수의 외국인투자자에게 국가의 공권력 행사 전반에 관하여 중재를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국가의 재판권(주권)을 포괄적·일반적으로 양보(포기)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건 바로 이 투자조약중재이다.

여기서 투자조약중재의 근거가 되는 투자조약에 관한 용어도 정리해 보자. 한 국가에서 출발한 자본이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의 영토 내에 투자되는 국제투자를 주제로 하여 체결된 조약을 두고 투자조약(Investment Treaty) 또는 국제투자협정(International Investment Agreement, 약어로 IIA)이라 한다. 투자조약에는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양자간투자조약처럼 단둘의 국가 사이에 투자만을 주제로 하여 체결한 양자간투자조약(Bilateral Investment Treaty, 약어로 BIT)이 있는데 이게 압도적인 주류다. 그 외에 한미FTA 또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사이에 체결된 USMCA(개정전 NAFTA)처럼 둘 또는 그보다 많은 국가 사이에 상품과 서비스 등 무역에 관한 내용에 더하여 투자에 관한 조항을 둔 조약이 있는데, 이를 두고 투자조항을 담고 있는 조약(Treaty with Investment Provisions, 약어로 TIPs)이라 한다.

투자조약이라 하여 모두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한국정부는 1964년 독일과의 사이에 또 1971년 스위스와의 사이에 투자조약을 체결하였고, 이들 두 조약은 지금까지도 유효하지만, 이들 투자조약에는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이들 조약에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중재를 허용하는 조항만이 있는데, 영어표현으로 State-State Dispute Settlement, 약어로 SSDS라 한다. 독일인 투자자가 한국에 투자하여 한국 정부와의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그 독일인 투자자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없고, 독일 정부가 그 선택에 따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중재만을 허용하는 투자조약은 1960년대, 1970년대 초에 체결된 것이 소수 남아 있고, 현재에 있는 대부분 투자조약에는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조항이 들어있다.

용어에 관하여 한마디만 더하자. 정부 발표문을 포함하여 한국의 문헌을 보면 ISD라는 표현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필자는 이런 표현을 영어로 된 문헌에서 본 적이 없다. 사용되는 용어는 ISDS로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의 약자이다. ISDS는 투자조약중재를 지칭하기도 하고, 투자조약에 그러한 중재를 인정하는 조항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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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조약중재를 두고, 서울대학교 신희택 교수는,

 

 투자유치국의 공권력 행사로 인한 외국인투자자의 투자재산에 대한 침해에 대한 보호장치로서 국제사회가 고안해 낸 것이 외국인투자자와 투자유치국 간의 투자와 관련한 분쟁을 중립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있는 국제중재를 통해서 해결하도록 하는 국제투자중재 제도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7] 외교통상부는 2011년 11월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절차 (ISD), 공정한 글로벌 스탠다드』

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배포하였다.

신 교수의 설명에 “국제사회가 고안해 낸 것”이라는 대목을 보고, 투자조약중재의 제도를 여러 국가가 참여하여 서로 머리를 맞대 이것저것 따져 보고 의견을 모아 만든 걸로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정부의 주장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제목에 요약된 셈인데, 그 근거로 두 개의 숫자를 제시하였다. 한국이 이미 체결하여 발효 중인 ISDS가 들어있는 투자조약의 수 87, 그리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ISDS가 들어있는 양자간투자조약의 수 2,676. 이들 숫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전후의 문맥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신 교수는 “중립적”이라 하고, 정부는 “공정”하다 하였는데, 이들 평가가 적절한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1966년 설립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ICSID”)는 원래 투자조약중재를 염두에 두고 생긴 기관이 아니다. 국가와 다른 국가 국민 간의 투자분쟁의 해결을 위한 협약(Convention on the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 between States and Nationals of Other States, “ICSID 협약”)은 ICSID 설립의 근거가 되었고, 한국은 1967년부터 회원국이며, 2020년 7월을 기준으로 회원국의 수가 155개국에 이른다. 그런데, 이 ICSID 협약은 외국인투자자와 투자유치국 사이에 개별적인 구체적 투자계약이 있고 그 투자계약에 분쟁해결의 방식으로 중재를 선택한 조항이 있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지, 투자조약중재를 예상하고 생긴 게 아니다.

외국인투자자와 투자유치국 간의 분쟁은 원래 투자유치국 내의 국내 분쟁으로 국내 법원의 재판권에 복속하는 것이고, 이를 중재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투자유치국이 동의하여야만 한다. 그런데 국가가 ICSID 협약에 가입한다는 것이 중재에 대한 동의는 아니다. A 국과 B 국이 모두 ICSID 협약의 회원국이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A 국 국적의 투자자가 B 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ICSID 협약과는 별도로 분쟁당사자 간에 즉 투자유치국과 외국인투자자 사이에 중재합의가 있어야 한다. 애초 ICSID 협약 당시 예상한 중재합의의 형태는 투자유치국과 외국인투자자 사이에 체결되는 개별 투자계약에 중재조항을 두는 경우였다. 투자조약에 중재조항을 둔다는 아이디어는 그때 아예 고려되거나 논의된 바 없다.


ICSID 협약에는 투자유치국과 외국인투자자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실체적 규범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중재조항을 담고 있는 투자계약에 투자유치국과 외국인투자자 간 서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담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외국인투자자와 투자유치국 사이에 체결된 투자계약을 근거로 한 투자중재를 염두에 두고 출발한 ICSID가 투자조약중재의 행정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부상하는 것은 1990년 이후의 일이다.

그러면,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조항을 담은 투자조약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퍼져나갔을까? 국제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갑론을박을 거쳐 고안한 것이 아니다. 하나의 국가가 다른 하나의 국가를 불러내어 둘만 있는 자리에서 일대일 각개격파식으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졌다. 왜 그랬을까? 힘센 사람도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불러 모으면 질문하는 사람도 나오고 반대하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라. 한 사람 한 사람 상대하면 질문도 적고 반대도 적다. 물정 모르는 상대는 선택되었다는 감격에 빠지기도 한다. 내 말대로 하자고 설득하기가 훨씬 쉽다.

1970년을 전후하여 네덜란드, 벨기에·룩셈부르크, 영국 등 서유럽 국가는 각자 북미와 서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소재하는 개별 국가와의 사이에 양자간투자조약을 체결하기 시작하였다.[8] 영국이 한 예를 보자. 영국은 1974년 양자간투자조약 초안을 준비하고 각개격파식으로 하나하나의 국가와 협상에 들어가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사이에 29개국과 사이에 하나같이 판에 박은 듯이 거의 똑같은 문구로 29개의 양자간투자조약을 체결하였다.[9] 1976년 한국과의 사이에, 1980년 스리랑카와의 사이에 체결한 것이 여기에 들어있다.[10]

영국-스리랑카 양자간투자조약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0년 역사상 최초의 투자조약중재 사건인 AAPL 사건에 대한 중재판정을 낳는다.[11]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1990년을 국제투자법이 출현한 해로 보는 사람도 있다.[12] 조약은 그 개념 자체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체결되는 것으로 민간기업은 조약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은 국제법상 법인격도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런데 민간기업이 조약에 근거하여 국가를 상대로 중재를 제기하여 그 판정까지 내려졌으니, 이것은 시대의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이것이다. 영국이 한국, 스리랑카 등 29개국과의 협상할 때 또는 조약 체결 이후라도 이 조약에 의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도를 창설한다는 점을 부각하여 고민하고 논의한 흔적이 전혀 없다.[13] 상대국은 말할 것도 없고, 초안을 만든 영국 자신도 이것이 진짜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는 증거도 없다.[14] 영국만이 아니라, 구미 선진국의 주도하에 1990년 이전에 적지 않은 수의 양자간투자조약이 체결되었지만, 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항의 의미를 논의한 기록, 문서, 학술서적을 찾을 수 없다.[15]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12월 소련이 붕괴하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하여 여러 나라가 경쟁하듯 양자간투자조약을 체결하여 그 수가 빠르게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에 대하여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폴슨 교수는, “조약의 경제적 혜택은 과장 광고되고, 반면에 조약의 위험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16] 제네바 국제대학원 파울린 교수는, “국가가 왜 이렇게 심각하게 자기의 주권을 제한하고, 놀랍게도 외국인투자자가 자기(국가)를 상대로 직접 중재를 제기할 수 있게 허용하였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에 답을 하였다.[17] 그의 설명에 따르면, 투자조약중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고안된 제도가 아니고, 1960년대부터 벌어진 우연한 일들이 조금씩 축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폴슨 교수가 2011년 런던정경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논문은 제목이 아예 “Sacrificing Sovereignty By Chance”이다. 생각 없이 주권을 포기한다는 뜻인데,[18] 이 논문에는 파키스탄의 사례가 인용되어 있다.

파키스탄의 법무부 장관은 2001년 10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온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발신인은 미국 워싱턴 DC에 소재한 ICSID로 스위스 민간기업이 스위스-파키스탄 양자간투자조약에 의해 파키스탄 정부를 상대로 1억1천만 달러의 손해를 구하는 중재를 신청하였음을 알리는 공문이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던 장관은 Attoreny-General 알리 칸에게 전화하여 ICSID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스위스 민간기업이 양자간투자조약이란 것을 근거로 하여 파키스탄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제기하는 일을 벌일 수 있는 건지? 물었다. 알리 칸은 저명한 국제법 전문가였지만,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었다. 수년 후 고백했듯이, “정말 솔직히 말해서, 도통 무슨 소린지 전혀 알 수 없었다.”[19]

세상에 없던 일이 불쑥 생겨난 걸 두고 파천황(破天荒)이라 하는데, 국제법의 전문가였기에 더더욱 그에게는 이게 파천황이었을 것이다. 왜? 조약은 개념 자체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체결되는 것으로 개인이나 민간기업(회사)은 그 당사자가 아니다. 또, 자기의 이름으로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할 수 있으며 소를 제기하고 받을 수도 있는 자격을 법인격이라고 하는데, 국제법상 법인격이 인정되는 것은 개별 국가와 UN이나 WTO와 같은 국제기구에 한정되고, 개인이나 민간기업(회사)은 일반적으로 법인격이 인정되지 않는다.[20]

다른 한편으로 중재는 구체적 사건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 당사자 사이에 구체적으로 중재를 통하여 판단을 받기로 합의하였을 때 비로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중재제도가 시작된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유효한 명제이다. 투자조약중재는 이런 모든 걸 뒤집고, 국제법상 법인격이 인정되지 않는 민간기업이 ? 그것도 특정 민간기업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 조약의 당사자도 아니면서 조약에 근거하여 국가의 공권력 행사 전반에 관한 분쟁을 대상으로 국가를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없던 상상하지 못했던 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알리 칸은 전화를 끊고 나서, ICSID 그리고 양자간투자조약의 영문 약자인 BIT를 구글에서 찾아본 연후에야 처음으로 이런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은 그는 관계 정부 부처에 파키스탄 정부가 1995년 스위스와의 사이에 양자간투자조약을 체결한 동기와 경위를 물었다. 관계 부처를 다 뒤져도 파키스탄 정부가 어떠한 의도를 갖고 체결하였는지? 조약 체결 전에 어떤 협상이 있었는지? 국회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기는 하였는지? 를 말해줄 기록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알아낸 사실은, 파키스탄 정부 대표단이 외국을 방문하였을 때 또는 외국 정부의 대표단이 파키스탄을 방문하였을 때 외국 정부가 문안을 내밀고 체결하자고 하면 파키스탄 정부는 그때마다 별거 아닌 것으로, 그냥 해도 되는 걸로 알고 양자간투자조약을 체결하였다는 것이다. 파키스탄 정부의 관계자들은 그것이 선린의 표시에 불과한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누구나 조약의 체결을 마치 무슨 외교적 성과를 이룬 듯이 언론에 홍보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조약은 법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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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떠했을까? 론스타 중재는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양자간투자조약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한미FTA가 없었고, 그래서 한미FTA를 둘러싸고 있었던 정도의 논의도 없는 상태에서 론스타 중재가 터졌더라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파키스탄의 경우와 과연 얼마나 달랐을까? 거슬러, 정부는 2011년 11월 한미FTA에 투자자-국가 중재조항이 들어있는 것을 옹호하기 위해 그전에 이미 체결한 투자조약이 87개나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왜 나만 갖고 이러세요! 왜 인제 와서 그러세요! 라 항변한 것이다. 그 87개의 투자조약에 론스타 중재의 근거가 된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양자간투자조약이 들어있은데, 1974년 12월 체결되어 1976년 9월 발효한 조약은 2006년 12월 체결되어 2011년 3월에 발효한 조약으로 대체되었다. 신구 투자조약은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정부는 한국-벨기에·룩셈부르크 양자간투자조약을 비롯하여 87개의 조약을 체결하면서 과연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체결하였는지? 이들 조약의 의미를 국민에게 알려 동의를 구한 적이 있는지? 국회는 여러 쟁점을 의미 있게 논의하였는지? 정부에 남아 있는 기록을 샅샅이 뒤지고 당시 관계했던 사람들에게 물어 실상이 어떠했는지 밝혀야 할 일이다.

한때 3,000개를 넘기도 하였는데, 2020년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 유효하게 존재하는 투자조약의 수는 2,646개로 그 대부분은 양자간투자조약이다.[21] 이 숫자를 들어 투자조약중재가 국제표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실제 우리 정부는 한미FTA에 들어있는 투자자-국가 중재조항을 옹호할 때 이 논리를 들먹였다. 이게 맞을까? 정말 국제표준이라면, UN 헌장처럼, 많은 국가가 참여한 1개의 조약이 있어야 맞다. 만약 100개의 국가가 모두 참여한 1개의 조약이 있다고 하면, 이와 같은 효과를 양자간조약의 형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 4,950개의 조약이 필요하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경우의 수에 관한 산식을 기억해 보라. 산식은 n(n-1)÷2로, 100명을 둘씩 짝 지울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0x(100-1)÷2 = 4,950이다. 국제표준이라 할만한 세계인권선언(서명한 국가의 수 192),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회원국의 수 164), 국제노동기구(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회원국의 수 187)를 양자간조약으로 구성하려면, 각각 18,336개, 13,366개, 17,391개의 조약이 필요하다. 그러니, 투자조약의 개수 2,646이라는 숫자가 어찌 국제표준임을 알리는 것이겠는가?

축구의 표준을 보고 싶으면, 봐야 할 리그가 있다. 숫자가 많다 하여 대부분이 한다고 하여 동네 축구에서 하는 것을 두고 누구도 표준이라 하지 않는다. 투자조약중재가 국제표준이 아님은, 미국이 서유럽의 어느 나라와의 사이에도 투자조약을 체결한 게 없다는 사실, 그리고 EU에 속한 국가 서로 간에는 투자조약중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조약중재의 결정적 결함은 상대국의 국가체제가 수준 이하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데 있다. 국제법은 비정한 것이다. 국제법의 제1의 법원(法源)은 조약인데, 조선과 일본이 1876년 체결한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이 바로 국제법이다. 강화도조약 제10조는: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 죄를 범하였을 경우 조선국에 교섭하여 인민은 모두 일본국에 돌려보내 심리하여 판결하고, 조선국 인민이 죄를 범하였을 경우 일본국에 교섭하여 인민은 모두 조선 관청에 넘겨 조사 판결하되 각각 그 나라의 법률에 근거하여 심문하고 판결하며, 조금이라도 엄호하거나 비호함이 없이 공평하고 정당하게 처리한다.

고 규정한다. 일본인이 조선에서 죄를 범하면 조선 내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조선의 법에 따라 조선의 재판권에 복속하여야 하는데, 일본의 법에 따라 일본이 재판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이를 불평등조약이라 한다. 그러면, 이 조약에 제3국에서 제3국의 법 또는 그 어떤 법에 따라 조선과 일본이 공동으로 선임한 재판관의 재판을 받도록 하면 중립적이고 공정한 것일까? 아니다. 여전히 부당하다. 왜냐하면 원래 조선 내에서 생긴 일이라 조선의 법에 따라야 하고 조선의 재판권에 복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조약을 다시 읽어 보라. 여기에도 ”공평하고 정당하게“라는 표현은 있다. 진짜 그런지는 따져 보는 사람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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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와 같아야 한다. 궁극에는 정의가 실현되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일대학 오웬 피스 교수의 말을 빌리면, 법은 정의 말고 그 무엇도 주인으로 섬기지 않으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법치주의에 머리를 숙이고 경배를 드린다.[22] 그러면 법치주의와 법이 도구로 쓰이는 경우의 차이는 무엇인가? 피스 교수에 의하면, 법치주의의 정당성은 법의 구체적 내용이 형성되고, 확인되며, 집행되는 과정에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공통의 관심을 두고 참여하는 데서 비롯된다.[23] 투자조약중재는 이게 빠져 있다. 법의 이름을 빌려 특정한 이익에 봉사하는 도구로 쓰인다. 그래서 투자조약중재는 타란티노 영화의 전반부만 있는 것과 같다.

론스타 중재판정이 내려지면, 정부가 제일 처음 해야 할 일은 판정문을 있는 그대로 모두 공개하는 일이다. 그리고, 투자조약중재의 문제를 원점에서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문제를 제대로 검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곽경직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KNC)

 
[1] LSF-KEB Holdings SCA and others v. Republic of Korea, ICSID Case No. ARB/12/37. 론스타 중재사건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당사자들이 제출한 서류 일부가 공개되어있는데, ① Claimants‘ Memorial on the Merits dated 15 October 2013의 일부(336쪽이 넘는 전체 중 220쪽), ② Respondent’s Counter-Memorial on Jurisdiction and Merits dated 21 March 2014의 일부(604쪽이 넘는 전체 중 51쪽), ③ Claimant’s Reply on Jurisdiction and Merits dated 1 October 2014의 일부(814쪽이 넘는 전체 중 26쪽)을 http://www.italaw.com/cases/2022 에서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내용은 모두 제한적으로 공개된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2] Charles N. Brower and Stephan W. Schill, “Is Arbitration a Threat or a Boon to the Legitimacy of International Investment Law?” Chicago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9 No. 2 (2009), pp. 472-498, p. 473, (this crisis is caused by the vagueness and indeterminacy of the standard investor rights, leading to problematic predictability in the application of investment treaties. ... and the resulting inconsistencies in the decisions of different arbitral tribunals.)
[3] Department for International Trade, Trade and Investment Factsheets (1 August 2022), p. 1.
[4] The 1970 Declaration on Principles of International Law, (All states enjoy sovereign equality. ... Each state has the right to freely choose and develop its political, social, economic and cultural systems.)
[5] Montevideo Convention, Article 9, (The jurisdiction of states within the limits of national territory applies to all the inhabitants. Nationals and foreigners are under the same protection of the law and the national authorities and the foreigners may not claim rights other or more extensive than those of the nationals.)
[6] 석광현, “국제분쟁해결의 맥락에서 본 국제상사중재,” 서울대학교 법학, 제55권 제2호 (2004.6), pp. 237-269, p.269, 주 118.
[7] 신희택, “국제분쟁해결의 맥락에서 본 국제투자중재: ICSID 협약에 의한 투자협정중재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법학, 제55권 제2호 (2004.6), pp. 193-231, p.194.
[8] 사기업인 외국인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을 상대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를 담은 최초의 투자조약은 1968년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사이에 체결된 양자간투자조약으로 알려져 있다. Sornarajah, p. 3, note 8, (Some identify the first treaty containing invetor-state arbitration as the investment treaty between Indonesia and the Netherlands made in 1968.)
[9] Eileen Denza, Shelagh Brooks, ‘Investment Protection Treaties: The United Kingdom Experience’, (1989) 36 International & Comparative Law Quaterly 908.
[10] 원문은 다음의 링크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investmentpolicy.unctad.org/international-investment-agreements/treaty-files/1843/downloadhttps://investmentpolicy.unctad.org/international-investment-agreements/treaty-files/2293/download 양자의 차이는 스리랑카와의 조약에 내국인대우에 관한 조항이 빠져 있는 것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같다.
[11] Asian Agricultural Products Ltd. (APPL) v. Republic of Sri Lanka, ICSID Case No. ARB/87/3, Final Award 27 June 1990. 그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홍콩이 여전히 영국 식민지로 남아 있을 때의 일로, 홍콩에 본사를 둔 Asian Agricultural Products Ltd. (“AAPL”)은 1983년 스리랑카에 현지인과 함께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였다. AAPL은 지분 48.2%를 보유하였고, 사업은 새우를 양식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것이었는데, 1987년 1월 스리랑카의 내전 중에 정부군이 반군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주요 사업시설인 새우양식장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AAPL은 1987년 7월 영국-스리랑카 양자간투자조약에 근거하여,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nternational Center for the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 “ICSID”)에 스리랑카 정부를 상대로 하여 손실의 보상을 구하는 중재를 신청하였고, ICSID 중재판정부는 1990년 스리랑카 정부에 손실보상을 명하는 중재판정을 내렸다.
[12] Arnaud de Nanteuil, International Investment Law (Edward Elgar, 2020) p. 1, (It would make sense to assume that [International Investment Law] emerged in 1990.)
[13] M. Sornarajah, Resistance and Change in the International Law on Foreign Invest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p.3 note 7, (Yet none of the commentators on the British treaties made around the time identified that investment treaties had made such a momentous change, enabling an individual or an corporation to bring a state to arbitration.) Sornarajah는, 영국이 그 무렵 체결한 다수의 양자간투자조약의 체결을 위한 협상에 참여하였던그리고 저명한 국제법률가인 Francis Mann의 ‘British Treaties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Foreign Investment’, (1981) 52 British Year Book of International Law 241, 이 두 논문을 지적하고, 여기 어디에도 이러한 획기적인 변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Id., ([N]either refers to the momentous change, if a change was in fact intended.)
[14] Sornarajah, p. 3, note 7, (The travaux preparatoires of the UK-Indonesia treaty, which was made public recently under the thirty-year rule of releasing public documents previously kept secret, does not indicate that such a result was intended.)
[15] Sonarajah (note 7), p.3 note 8, (The silence was not confined to British authors. Though treaties containing similar articles on dispute resolution had existed in US treaties for some time, no writer or arbitral award had suggested that such a course of securing jurisdiction purely on the basis of the treaty statement was a possibility. ... Yet the interpretation that would support a unilateral recourse to arbitration by the foreign investor had to await AALP ...)
[16] Lauge Poulsen, Sacrificing Sovereignty by Chance: Investment Treaties, Developing Countries, and Bounded Rationality, Ph.D Thesis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s, June 2011), p. 300, (“when the treaties proliferated in the 1990s, their material benefits were often oversold and their risks largely unknown.”) 저개발국가에 초점을 두고 이 문제를 살펴본 것으로, Andrew T. Guzman, ‘Why LDCs Sign Treaties That Hurt Them: Explaining the Popularity of Bilateral Investment Treaties, Virginia Jounal of International Law, Vol. 38, No. 4 (Summer 1998), pp. 639-668.
[17] Joost Pouwelyne, “At the Edge of Chaos? Foreign Investment Law as a Complex Adaptive System, How It Emerged and How It Can Be Reformed,” ICSID Review, (2014), pp. 1-14, p. 2 (“why did countries ever agree ? and continue to agree- to limit their sovereign powers over foreign investment so substantially and, most strikingly, to open themselves up to direct claims by private investors in investor-State arbitration?”)
[18] Poulsen, Note 16.
[19] ‘To be perfectly honest, … I did not have a clue.’ Paulson, p. 13.
[20] Malcolm N. Shaw, International Law (Cambridge University Press, 8th ed. 2017), p.155, p.197, p.204, p.205. 이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는, Roland Portmann, Legal Personality in International Law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을 보라.
[21]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21, p.18.
[22] Owen M. Fiss, “The Autonomy of Law,” 26 Yale J. Int’l L. p. 517 (2001), (Law ... serves no master other than justice. We value law for that reason and celebrate it by proclaiming that all bow to the rule of law.)
[23] Owen M. Fiss, “Against Settlement,” Yale Law Journal, Vol. 93, No. 6 (May, 1984), pp. 1073-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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