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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창

[미술의 창] 사진과 추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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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느끼는 대로 그리는 마티스와 같은 화가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20세기에 추상화의 시대가 열렸다. 피카소와 같이 뜻밖의 형태로 실물을 재구성하거나 칸딘스키처럼 색과 선으로만 그리는 화가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실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능력보다 화가의 느낌에 따라 실물을 재창조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추상화 조류를 만들어낸 또 다른 결정적 계기는 사진의 발명이다. 1830년대 은판 사진(daguerreotype)이 출현했을 때, 충격을 받은 화가 폴 들라호쉬(Paul Delaroche)는 “오늘부터 그림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화가의 손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실물을 재현하는 사진이 그림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리는 폭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화가가 실물을 똑같이 그린 그림을 보고 감탄했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사진이 주는 실물 재현력에 감탄하게 됐다. 화가의 실물 재현력은 감탄의 대상에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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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 은판 사진, 1864년경>

 

하지만 그림은 죽지 않았다. 사진의 재현 능력에 충격을 받은 화가들은 사실주의적 묘사를 회피하고 실제에서 일부분만을 추출해 감성에 따라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그림을 내놓기 시작했다. 마티스가 부거호우의 실물재현 기법을 대면했을 때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고 느껴 ‘회피’를 통한 창조를 택했던 것과 비슷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새로운 문법이 추상화라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것은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사진 작품에서도 추상화적인 흐름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사진작가들은 처음에 사진 기술을 활용해서 최대한 사실적인 작품을 내놓는데 치중했다. 빠르게 발달하는 사진 기술을 쫓아가는 것이 사진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처럼 받아들여졌다.

실물을 재현하는 느낌보다
재창조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
사진을 회피해 추상화를 만들고
이제는 사진이 추상화를 쫓아가


그런데 기술을 쫓아가며 내놓는 사실적 작품은 갈수록 예술적 매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보이는 대상을 극도로 선명하게 재현할 수 있는 경지까지 사진 기술이 발달했지만, 그것은 작가의 능력을 나타낸다기보다 카메라의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휴대폰이 보급된 이후로는 휴대폰만 가지면 너도나도 사진작가가 될 수 있게 됐다. 우리는 지금 멋지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사진작가들 중에는 사진기술의 사실주의 능력을 회피하고 추상의 문법을 사진에 포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작가의 시감(視感)으로 카메라 렌즈를 확장해서 사실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추상적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린 스턴같은 작가는 찍는 물체의 자세한 묘사에 관심이 없다. 베일에 가려진 물체들의 흐릿한 윤곽과 베일의 주름이 어우러져 은은한 빛 속에 잠겨있는 듯한 모습이 나타난다. 추상화 같은 느낌을 주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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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스턴(Lynn Stern), Force Field #21-131, 2021년, Archival Inkjet Pigment Print>
 

베이징에서 만났던 사진작가 쉬 궈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더 좋은 카메라로 계속해서 바꾸며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기술 발달의 추종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멈추고 도시풍경을 비현실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품 세계를 전환했다.


사진은 추상화 조류를 만들어낸 동력이었다. 사진의 사실성 앞에 놀라고 자극받은 화가들이 ‘느낌의 표현’을 회화의 본질로 여기는 추상화가 발전했다. 사진작가들도 비슷한 변모 과정을 거쳐왔다. 사진 기술이 발달하고 보편화되면서 사실성으로 예술적 감탄을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었다. 사진작가들도 ‘느낌의 포착’이 담긴 사진을 내놓으며 활로를 모색한다. 사진을 회피해 추상화가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사진이 추상화를 쫓아간다.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