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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과 함께

[법의 신과 함께] 위자료 위원회를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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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교통사고 손해배상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90대 남성이 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었다. 필자는 유가족 측 대리인이었다. 피해자가 고령인 탓에 일실수입은 문제 될 것 없었고 과실 비율과 위자료만 쟁점이 되었다.

변론기일에 재판장이 양측 대리인에게 주장 요지를 진술하라고 하였다. 필자는 “고인의 과실은 전혀 없고, 위자료는 통상의 기준에 따라 1억 원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과실 없는 교통사고 사망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대부분 1억 원의 위자료가 인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방 대리인이 이런 반론을 폈다. "고인이 여생이 많이 남지 않았던 90대인 점을 감안하면 위자료는 감액될 필요가 있습니다". 재판장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잠시 생각을 하곤 되물었다. "노인이 죽으면 덜 슬픈가요?" 딱히 상대방 대리인을 나무라거나 하는 어조는 아니었고, 재판장도 어딘지 혼란스럽다고 느낀 것 같았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여러 의문이 들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정신적 고통은 과연 언제나 동일한 것일까? 흔히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들 하는데, 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은 슬픔과 부모를 떠나보낸 슬픔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유가족 전원의 위자료를 합쳐서 1억 원을 인정하는 실무관행에도 의문이 들었다. 유가족이 2명이든 4명이든 합쳐서 1억 원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가족 수가 많아지면 1인당 슬픔이 줄어들기라도 하는 걸까?


정신적 고통은 측정 방법 없어
위자료 산정 근거에 항상 의문
양형위원회처럼 기준 만들면
불신은 조금 해소되지 않을까


이 모든 의문의 원인은 정신적 고통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의 대원칙은 ‘전보배상’, 즉 실제로 입은 피해를 메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적 고통도 그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만 있다면 위자료 산정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을 측정할 방법이 없는 탓에, 법관은 법원 내부의 기준이나 유사한 판례 등을 참고삼아 적당한 금액을 위자료로 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각종 의문과 갈등이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 사례뿐만이 아니다. 의료사고로 실명한 경우에도 1000~2000만 원의 위자료만 인정되는가 하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해도 눈에 띄는 상처가 없다면 위자료 100~200만 원도 감사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금액도 문제지만 재판을 받는 당사자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금액이 산정되었는지 알 수 없기에 더욱 울화가 치밀게 된다. 사법불신의 원인이 또 하나 추가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으면 과거 ‘고무줄 양형’ 논란이 떠오른다.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형사재판에서의 양형은 공식적인 기준이 없었다. 자연히 양형을 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2007년 대법원 산하에 양형위원회가 설립되어 주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상세히 설정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공개했다. 물론 양형기준이 강제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상당수의 판결이 양형기준을 따르고 있다. 국민들은 세부 기준을 보면서 양형의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위자료도 별도의 위원회를 설립해 산정기준을 만들고 이를 공개하면 어떨까. 그간 제한된 분야에서 비슷한 시도가 종종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일선 법원으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위원회를 설립하고 법관 외의 다양한 구성원을 두어 이들의 논의를 통해 상세한 위자료 산정기준을 설정하고 공개한다면 어떨까. 법관의 고민과 부담도 줄어들고 국민의 답답함도 조금은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류인규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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