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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논단

착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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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착한 변호사다. 약자에게 손을 내밀고, 의뢰인의 거짓말에 분개한다. ‘비겁한 짓까지 해가며 변호를 해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드라마 작가는 ‘정의감, 올곧음 등 자폐로 강화되는 인간의 특성’에 매력을 느껴 자폐 변호사를 상정하였다고 한다.

드라마는 변호사 우영우의 성장, 성공 스토리를 그린다. 그러나 현실에서 착한 변호사의 성공이란 자폐스펙트럼 장애 변호사가 탄생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착하다’는 말은 무능함이나 똑똑하지 못함을 포장하는 단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 사람 참 착해’라는 말은 ‘능력이나 외모는 그저 그래’라는 평가를 에둘러 표현한다. 그러기에 많은 변호사들이 착하고 올바름을 멀리하더라도 ‘유능하고 사건해결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으려 애쓴다. 그 능력을 활용하여 부를 얻고 성공한 스토리를 쓰려 한다.

그렇지만 국민이 바라는 변호사는 ‘착하면서도 유능한’ 변호사이다. 의뢰인 개개인은 때로 착하지 않은 변호사,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변호사를 찾을지 몰라도, 국민이 합의한 사법시스템 속의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 여타 전문직과는 달리 변호사법은 변호사 직의 ‘사명’과 ‘지위’를 첫머리에 내걸고 있다. 변호사의 사명은 ‘사회정의의 실현’(제1조), 변호사의 지위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직’(제2조). 변호사가 그저 돈만 좇는 법률상인이나 법기술자가 아니라는 엄숙한 선언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될 뿐, 사회정의의 구현자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물론 변호사는 악인도 변호할 수 있다. 의뢰인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법률사무 처리가 본연의 직무이다. 근대 사법시스템은 변호사의 이러한 역할을 통하여 실체적 진실 발견과 국민의 권리 보장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마련하였다. 그 길 자체가 정의 실현의 과정이므로, 변호사가 강력범이나 파렴치범을 변호한다고, 대기업이나 부자를 두둔한다고 마구 비난하는 일은 옳지 않다.

국민이 바라는 변호사는
‘착하면서도 유능한’ 변호사
착함에는 따뜻한 선함 등이 배어
단순한 곧음 이상의 큰 힘을 발휘


하지만 누구든 적합한 변호사로부터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변호사를 통한 정의의 길은 완성된다. 상대방에 비하여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변론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때, 형식적인 변호에 좌절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생사여탈을 맡길 수밖에 없을 때,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더 나은 변호사를 구할 여력이 안 될 때, 변호사법에서 정한 사회정의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린다. 솔직히 사건의 절박성과 난이도는 의뢰인의 지위나 부와는 무관하다. 굳이 따지자면 가난한 자의 사건이 생존을 위하여 더 절실할 가능성이 높다. 약자라고 당연히 정의로운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정의를 찾을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돈이 없으면 유능한 변호사로부터 질 좋은 법률서비스를 제공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소송구조와 국선변호 등의 제도적 장치가 제아무리 완비되었다 한들, 정의의 공백을 완벽히 메울 수는 없다. 그 공백을 메우는 사람이 바로 착한 변호사다. 우영우처럼 바쁜 시간을 쪼개고 마음 씀씀이를 보태든, 프로보노에 적극 나서든, 공익사건을 전담하거나 금전적 후원을 하든, 정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애쓰는 변호사다. 착함에는 따듯함, 부드러움, 선함이 배어 있어 단순한 곧음 이상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우리는 우영우 변호사에 더욱 환호한다.

생존을 걱정하는 변호사가 즐비한 시대에 착한 변호사 운운은 현실에 맞지 않는 한가한 소리라고 탓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변호사가 개인사업자 이상의 존재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변호사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변호사의 역할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를 위하여도, 국민을 위하여도 현실판 ‘착한 변호사 우영우’가 넘쳐나길 소망한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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