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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과 함께

[법의 신과 함께] T와 F 사이 어디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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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마땅한 화제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날씨 이야기는 진부하고 긴 대화를 이어 나가기 어렵다. 신변잡기는 사적인데다가 자칫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얼음장 같은 어색함을 깨뜨려야 할 때, 요즘 친구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MBTI는 자기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방법이다. 휴대전화로 몇 가지 문답만 하면 나의 성격을 손쉽게 알 수 있어서 신속과 효율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에게 선풍적이다. MBTI는 4가지 분류 지표에 따라 수검자를 16가지 성격 유형 중 하나로 나누는데, 설명하자면 이렇다.

4가지 분류 지표는 ‘외향-내향 지표(E-I)’, ‘감각-직관 지표(N-S)’, ‘사고-감정 지표(T-F)’, ‘판단-인식 지표(J-P)’다. 수검자는 각 지표에서 하나씩을 선정해 조합한 성격 유형을 부여받는다. ‘ENTJ’, ‘ISFP’ 같은 식이다. 각각의 성격 유형마다 자세한 설명도 부연되는데 어찌나 족집게 같은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80억에 달하는 인간군상을 고작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분류한다는 발상에 선뜻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작두타는 무당처럼 속속 성격을 맞추다 보니, MBTI는 입에서 입으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혈액형별 성격 분류가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시절이 생각난달까?

MBTI 성격 유형별 상황대처 방식을 다루는 우스갯소리도 흥미롭다. 특히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T와 F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T와 F가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나 교통사고 났어!” 수화기 너머 상대방이 다급하다.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T는 “보험 들었지? 보험사에 전화하고, 사진 찍어놔!”라고, 감정적 교류를 중시하는 F는 “어떡해! 다친 곳은 없어? 병원부터 가자”라고 말한다. 물론 농담일 테지만, 둘의 차이가 극명하다.

피해자 역할을 대신하는 게 검사
그러나 피고인 권익도 고려해야
어느 한쪽도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기 위해 긴장 또 긴장…


우리 형사소송법은 국가소추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오직 검사만이 공소를 제기하여 피의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고, 사소는 금지된다. 사소가 허용되는 사인소추주의와 달리 국가소추주의는 국가가 피해자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대신하는 국가기관이 바로 검사다. 피해자의 억울한 사정에 공감하고, 그를 대변하는 검사의 역할은 F의 성격 유형을 닮았다.

하지만 검사는 피해자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국가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수사, 공소제기 및 유지를 할 의무와 더불어 그 과정에서 피의자 내지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할 의무를 부담한다. 예컨대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했다면 검사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법원에 제출할 객관의무가 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차가운 머리로 피의자 내지 피고인의 권익도 고려해야 하는 검사의 역할은 T의 성격 유형을 닮았다.

두 역할 사이에서 어떤 역할에 방점을 두어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말이야 둘을 적정하게 섞어서 수행하면 그만이라고 쉽게 할 수 있지만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쉽지 않다. 범죄 피해를 입고도 가해자에게 한바탕 욕지거리를 해 주거나 제대로 된 금전배상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전자에 무게를 두어야 하나 싶다가도, 피의자 내지 피고인 또한 검사가 보호해야 할 국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후자에 무게를 두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언제쯤 그 단단한 동아줄 위에서 ‘왕의 남자’ 장생처럼 땅 위를 거닐 듯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어쩌면 검사를 하는 동안 내내 T와 F 사이 어디쯤에서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엄지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긴장을 해야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정거장 검사(서울중앙지검·<슬기로운 검사생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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