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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의 회고록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11-1)

3부 채색(彩色) ⑪ 기획이란 용어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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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역사 담은 법무부사 발간…법무 발전 장기계획도 수립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Ⅰ

(1987. 6. 3. - 1989. 3. 28.)



정해창(丁海昌)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검사장 직급인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승진했다. 발령 직전 이종남(李種南) 검찰총장은 정 장관이 나를 특별히 법무부의 간부로 발탁했음을 알려줬다.

1982년 6월 법무과장 시절, 정 장관이 법무부 차관으로 기용됐을 당시 2개월간 직속 부하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내가 기획관리실장으로 정 장관을 1년 6개월간 모신 후, 그는 법무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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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사 편찬 당시 법무부 실·국장이상 간부일동 
(왼쪽부터) 기획관리실장 송종의, 법무실장 임상현, 검찰국장 김유후, 법무부장관 정해창, 법무부차관 한영석, 교정국장 故김동철, 보호국장 故변재일, 출입국관리국장 조기현
<제공=송종의 장관>


기획관리실은 1961년 8월 25일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각 행정각부에 신설됐다. 법무부는 검찰·교정·출입국 등 여러 부서가 마치 연방공화국 같은 체제로 운영되는 중앙행정기관이라 일반 행정부처와는 달랐다. 명목상 기획관리실의 통제는 받지만, 실제로는 예산 편성·집행에 있어 독립공화국적인 운영을 하고 있었다.

정 장관 재임 시절 교정국 시설과 업무가 기획관리실로 이관돼 시설관리담당관실이 신설됐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법무부의 정사(正史)에는 한 줄도 기록될 수 없었던 내용을 여기에 적어 둔다.

교정시설이 검찰청보다 더 크고 방대했던 법무부 특성상 수십 년간 교정국 시설과에서 법무부에 책정된 사법시설 특별회계 예산을 집행해오고 있었다. 법무행정의 달인이었던 정 장관은 법무부 본부가 안고 있던 이 문제점을 깊이 인식했고, 극도의 보안 속에 개정 작업을 준비해오다 예기치 못한 교정사고로 조기에 결말을 보게됐다.

1988년 10월 8일 교도소에서 호송하던 죄수 25명 중 12명이 탈주하는 큰 사고가 있었다. 그중 2명만 즉시 체포했을 뿐, 나머지 탈주범의 검거에 많은 시일이 소요돼 큰 파문이 일었다. 이 사고로 법무부 장관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까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겨레신문에 서울구치소 비위 사실이 특종기사로 보도됐다. 이 구치소에 호화 집기로 가득 찬 법무부 장관의 집무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법무부에서 즉시 진상을 조사한 결과, 보도 내용에 다소 과장된 내용이 있긴 했으나 구치소 건물에 법무부 장관 집무실이 마련돼 있는 것이 사실로 판명됐다.

교정 당국자만 알고 있었던 내용이니 법무부 장관이 대로하였음은 불문가지이다. 도대체 장관이 서울구치소에 들어가 그 건물에서 집무할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법시설 특별회계의 예산을 교정국 시설과에서 집행하다 보니 이런 엉뚱한 일까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진상이 드러난 후 내게 장관의 엄중한 지시가 내려왔다. 내가 이미 보고했던 내용대로 기획관리실에 시설담당관을 신설해 교정국 시설과에서 취급하던 사법시설 특별회계예산에 관한 모든 업무를 이관하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인원을 배정해 법무부직제를 즉시 개정하라는 내용의 지시였다. 이 직제개정이 전광석화처럼 추진돼 한 달 뒤인 1988년 11월 24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으로써 법무부 기획관리실에 시설담당관직이 신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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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발간된 법무부사 <제공=송종의 장관>

 

기획관리실장으로 부임된 직후 업무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장관의 특명을 받았다. 법무부 40년의 역사인 《법무부사》의 편찬 계획을 수립해 조속히 발간하라는 취지의 직무 명령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법무부의 역사를 1권의 책으로 만들라는 지시였다.


장관 특명에 따라 즉시 법무부사 편찬위원회가 구성됐다. 법무부차관 한영석(韓永錫)을 편찬위원장으로, 법무부의 각 실·국장인 기획관리실장 송종의(宋宗義), 법무실장 임상현(任尙鉉), 검찰국장 김유후(金有厚), 보호국장 변재일(卞在日), 교정국장 김동철(金東哲), 출입국관리국장 조기현(曺麒鉉) 등 6명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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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위원으로 5명이 선정됐다. 집필 위원장은 보호국 관찰과장 이범관(李範觀) 검사이고, 법무실 검찰관 이훈규(李勳圭), 검찰국 검찰관 정진섭(鄭陳燮), 교정국 교정관 정동진(丁東鎭), 출입국관리국 출입국사무관 최수근(崔洙根) 등 4명이 집필 위원이었다.

정 장관이 퇴임하기 한 달 전인 1988년 2월 15일 드디어 법무부의 모든 역사를 담은 《법무부사》가 발간됐다. 8개월이 넘는 기간 수십 차례의 회의를 진행하며 위원들이 매달린 보람찬 결실이었다. 발간사를 집필했던 제37대 정해창 법무부 장관은 나보다 훨씬 진한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이 기회에 뒤늦게나마 이 어려운 작업을 마무리한 집필위원장 이범관 검사를 비롯한 집필 위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다.

정 장관 명으로 진행한 또 하나의 사업을 적어본다. 어느 날 오찬을 끝내고 법무부 청사로 함께 걸어가던 중 정 장관이 “송 실장!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듯 법무부도 이런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말씀했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런 장기발전계획이 마련되어 있으면 참 좋겠지요”라고 간단히 답했다. 장관이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라 여겨 이렇게 간단히 대답하고 말았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까? 장관이 내게 “우리 얘기했던 법무부 장기발전계획은 잘 추진되고 있소?” 무슨 몽둥이로 뒤통수를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정 장관이 부하들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은 이런 경우가 많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급하게 TF 구성안을 마련했다. 검찰 제4과장 윤동민(尹東旻), 법무실의 박종록(朴鍾廘) 검사, 보호국의 주성원(周盛源) 검사를 뽑았다. 검사들의 두뇌를 빌려야 실현될 수 있는 일이었으므로 검사들이 소속된 법무실, 검찰국, 보호국에서 각 1명씩이 뽑혀 3명을 구성원으로 TF를 발족하게 된 것이다. 단장을 맡았던 윤동민 검사의 추천으로 검찰 제4과 소속 말석 검사였던 박한철(朴漢澈) 검사도 장장 8개월 걸쳐 진행된 이 업무에 추가로 투입됐다.

이 기획단에서 추진했던 법무부 장기발전계획은 제1차 5개년 계획과 제2차 5개년 계획 두 가지로 이뤄졌다. 제1차 5개년 계획은 한영석 법무부 차관 재직 시에 결말을 봤고, 제2차 5개년 계획은 후임인 서정신(徐廷信) 차관 재직 시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두 계획 모두 정해창 장관의 재임 시에 이뤄진 것이다.

교정국서 사법시설 특별회계 집행으로
“구치소에 장관 집무실” 엉뚱한 보도 파문
장관 특명으로 법무부 직제 개편 착수
기획관리실에 시설담당관 신설해 이관
‘법무부사’ 편찬…법무부 40년 역사 정리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하듯
법무부도 장기 발전계획 수립했으면
장관의 의중 뒤늦게 알고 나서 서둘러
급하게 TF팀 구성…장관 재임 중 마무리
팀원들 야식비로 장관 판공비 거덜 내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법무부가 이 계획 내용대로 발전되면서 기구 개편, 기관의 증설, 인원의 증원과 이에 필요한 예산의 확보가 차질 없이 추진되었는지의 여부는 내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계획이 법무부가 걸어 나갈 앞길의 확실하고도 분명한 이정표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 기획단에서는 위의 기본적 계획 이외에 그때까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각국의 형사사법제도》, 《각국의 경찰제도》라는 두 권의 책자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앞으로 재연될지 알 수 없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 움직임에 검찰이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이런 책자까지 만들어 배포하면서 검사들에게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외국의 법제를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이런 작업이 이뤄졌던 것이다.

이런 방대한 내용의 작업이었기에 여기에도 상당한 예산이 소요됐다. 그러나 이 작업을 뒷받침할 예산이 마땅치 않았다. 나는 기획관리실장으로서 예산의 염출 방법 이외에 별도의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장관은 검찰총장과 달리 수사정보비 같은 예산을 쓸 수 없는 직책이므로 실제로 이런 일을 추진하는 부하들에게 생색내는 돈을 줄 수 없는 벼슬이다. 그러나 《법무부사》의 편찬과 법무 발전계획의 수립이라는 두 큰 과제가 거의 맞물려 추진되고 있었으므로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부하들에게 밥값이라도 주면서 격려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다.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장관실을 드나들면서 봉투를 달라고 했으니, 장관은 나를 고약한 빚쟁이처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 청을 거절한 바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장관실의 판공비 현황을 파악해 보았더니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을 알게 되었다. “네가 달라고 하면 준다. 그러나 없으면 못 주니 돈을 받아 가려거든 네가 알아서 해라.” 이런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산하기관 예산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해준 선배 실·국장들의 도움으로 겨우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위 기획단에서는 1988년 12월 16일 대통령선거로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업무 보고, 퇴임이 예정된 전두한 대통령에 대한 업무 실적 보고, 연초에 시행되는 대통령에 대한 신년 업무 보고, 새로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업무 계획 보고 등 크고 작은 모든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기획단 단장이었던 윤동민 검사는 이미 고인이 됐다. 그 어려운 일을 처리하면서도 늘 재치 있는 말로 부하 검사들을 웃기며 배꼽을 쥐게 했던 그 모습을 이제는 영영 찾아볼 수 없다. 하늘이 무심한 것 같아 하늘을 쳐다보며 그의 명복을 빌면서 세 분 검사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는 바이다.


<정리=박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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