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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편집인 칼럼

공공연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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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통계는 아직 기다리기로 하고, 2020년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만 보면 모두 7만90건인데 그 중 본안 사건은 4만6231건이다. 재판에 참여하는 대법관 12인의 1인당 배당 건수는 3853건으로 한 달에 321건씩 처리했다. 대법관 4인이 한 개의 부를 구성하여 매달 두 차례 합의를 하는데, 한 사람이 160건씩 들고 들어간 셈이다. 정시에 출근하여 8시간 동안 1초도 허비하지 않고 합의를 시도할 경우, 대법관 1인당 한 건 처리에 허용되는 시간은 45초다. 사건번호 부르고 결론만 말하기에도 숨이 가쁘다.

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의 평균 재판 시간이 45초라면 보통사람들의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된다. 사건에 따라 경중이 있긴 하지만, 대법관 4인이 한 건 합의해 결론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4분도 아닌 45초라면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엄연한 사실이자 현실이다. 법원에서 발간하는 사법연감은 도서관에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통해 금방 확인이 가능하다. 계산은 나눗셈과 곱셈 한두 번이면 끝난다. 공공연한 비밀이다.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여 공공연하겠지만, 왜 비밀인가? 숫자가 지니고 있는 의미 때문이다. 숫자를 이리저리 따져 보면 사건당 합의 시간이 나온다. 그 시간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경악할 노릇인가. 시간을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놀라운 이야기도 풍문처럼 떠돈다. 대법관들은 휴일 없이 매일 10건 이상의 판결문을 써야 한다는 둥, 사실상 10초 재판이라는 둥. 실제로 그렇다면 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도장만 찍는가, 동전을 던지는가?

세상만사 대법원이 결정하는 듯
사건은 언제나 증가하는 추세
대법관 증원보다 사건 제한이 합리적
솔직하지 않고서 해결책 마련할까
 

 

당연히 재판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하는 것도 아니다. 재판연구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법관이 절반도 채 읽지 못하는 기록을 검토하고 판결문의 토대가 되는 보고서를 수 차례 작성한다. 어떤 의미에서 젊은 그들은 대법관보다 체력도 더 좋고 능력도 낫다. 대법관은 끝없이 반복되는 유령의 45초에 매달릴지 모르나, 그들이 많은 시간을 쓴다. 시간이 걸리지 않는 사건도 많다. 어쨌거나 당장 상고심제도가 최종심으로 기능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책임은 대법관이 진다. 그래도 45초는 납득하기 힘들다.

십여 년 전, 진보적 성향으로 알려진 대법관 한 사람이 학계 및 시민단체 두어 사람과 만나 공공연한 비밀을 두고 머리를 맞댔다. 당시 계산으로 한 건당 합의 시간은 여유롭게도 1분 20초였다. 대법관 수를 늘려 봤자 갑자기 몇 배로 할 수도 없고, 기껏해야 부를 한두 개 추가하는 정도다. 두 배로 확대한들, 2분 40초면 충분한가. 세상만사를 대법원이 결정하는 듯 사건은 언제나 증가 추세다. 대법관 증원보다 사건을 제한하는 것이 당연히 합리적이었다. 상고법원도 양승태 대법원 이전에 이미 그때 논의되었다.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여 해결책을 호소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종국에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어떤 형태로든 상고심 사건 수를 제한하는 방식은 퇴행적 보수주의로 반민주적이라 단정하는 여론의 비난을 뚫을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엄연한 진실을 외면하면서 만든 자기 그림자 속에 공공연한 비밀을 가두고 지낸다. 최근 하급심의 재판 지연이 거듭 비판대 위에 오르는데, 인구 감소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모든 사회적 의견이 정치적 이념의 양극화로 귀결되는 시대에, 재판 수의 문제를 재판의 문제와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솔직하지 않고서 해결책 마련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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