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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꿈을 좇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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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개의 햄버거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에게는 커피조차도 호사였다. 꼬깃꼬깃 몇 장 남은 1달러 지폐들을 몇 번이고 만지작거리며 망설이다 카페에 앉았다. 캘리포니아주의 재정 위기로 장학금이 끊겨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캠퍼스는 유달리 운치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서 전자공학도들이 디지털 신호처리이론에 관해 토론하며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대수기하학에서 진작에 증명된 로직을 원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오지랖 넓게 끼어들어 대강의 설명을 해주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좌장이던 젊은 교수는 그를 자기 연구실로 초대했고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돈이 없어 귀국해야 한다는 그에게 전보다 훨씬 많은 장학금을 주선해주었다. '교수'라는 내 친구의 꿈을 이루게 해준 것이다.

드라마 같은 이 스토리의 주인공은 박형주 전 아주대 총장이고, 젊은 교수는 마르틴 베텔리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교 총장이다(2022년 QS 세계대학 랭킹 14위).

박 총장은 이런 인연 때문인지 학문간의 커넥션과 융합을 항상 강조해왔다. 그의 후학 허준이 교수도 대수기하학의 이론을 조합론에 융합하여 로타 추측 등 11개의 난제를 증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필즈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같은 문외한은 다 같은 수학이니 서로 잘 알 거라는 무식한 소리를 용감히 하겠지만 이들은 다른 체계로 구분되어 연구되고 있었는데 허 교수가 시인 같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으로 그 경계를 넘나들어 시대의 난제들을 해결한 것이었다.

이렇듯 학문과 문화는 서로 융합하여 장벽을 허물고 있는 반면 개방화 글로벌화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경제 분야는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원자재와 상품의 국경 없는 이동을 통해 번영을 구가해왔고 그 혜택을 톡톡히 본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끼어들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다. 하긴 브레튼우즈 체제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통해 유럽을 부흥시켜 공산주의의 서진을 막으려 했던 것이나, 미국이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후원하여 소련을 견제하려 했던 것 자체가 정치적이었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습긴 하다.

아무튼 한때 성공한 듯 보였던 이런 구도는 푸틴의 반동과 중화주의의 재건이 불러온 '멀티 폴라리즘(multi polarism)'으로 크나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서방은 중국의 경제재건을 통해 민주주의가 확산하기를 기대했으나 일당 독재 강화와 1인 장기집권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중국과 중국인들의 자기중심적이다 못해 극도로 이기적인 속성을 간과한 실책 때문이었다.

이는 대한민국 생존전략의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앞으로 대립하는 블록들로부터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고 그때마다 내부적으로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힌 자들의 선전·선동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선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의 불친절한 이웃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박 총장이 중심이 되어 유치하고 개최한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행사이었다. 당시 122개 국가에서 5000여 명의 학자가 참석함으로써 우리가 세계 수학계의 변방이라는 편견을 깨고 필즈상 수상의 초석을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이웃은 뻔뻔하게도 자기 나라 학자들의 발표 횟수를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이 대회를 주관하는 국제수학연맹에는 20개 정도의 분과가 있고 각 분과마다 발표자를 정해 연맹에 추천하기에 아무리 주최국이라도 이를 마음대로 늘릴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우리에게 하명하듯 억지를 부렸고 이것이 통하지 않자 자국 학자들의 직접 참석을 막아버렸다(수틀린다고 수조 원 투자한 우리나라 회사들을 벌거벗겨 쫓아내고 드라마, 영화의 진출을 막아놓은 채 공짜로 훔쳐보고 베끼는 자들이니 그나마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리걸 마인드로 무장한 우리 법조인들은 기본원칙이 깨지면 논리 전개가 되지 않아 틀린 답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안다. 내 자유와 권리가 소중한 만큼 친구의 그것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우의 기본원칙은 국가 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중국몽을 믿는 분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김병철 부장판사 (서울동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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