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법의 신과 함께

[법의 신과 함께] 할 일은 다 하셨습니까?

 

 

2022_withnewlaw_ung.jpg


최근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66세 정상현(가명) 씨의 국선변호를 하였다. 변호인접견 당시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의 얼굴과 눈은 고요했고 깊었다. “잘못했으니 엄하게 처벌받아야지요. 부끄럽지만 집도 절도 핸드폰도 없습니다. 아내와는 30여 년 전에 헤어졌지요. 그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제는 서른 살이 훨씬 넘었겠지만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과거에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을 했지만, 지금은 온갖 병을 달고 살아요. 힘이 없어 일을하지 못해 도둑질을 했습니다. 자전거도 훔치고, 화물차량 뒤에 실려있는 건설공구도 훔쳐다 팔았습니다. 팔아서 얼마간의 돈을 손에 쥐면 쪽방촌에서 하룻밤 잘 수 있습니다. 하루 방값은 1만5000원에서 2만 원 정도 합니다. 2만 원짜리 방은 그래도 좋은 방입니다.” 상현 씨는 종로에 있는 2만 원짜리 ‘좋은 방’에 있다가 체포되었다.


또 다른 국선변호 사건에서 변론을 했던 41세 최영진(가명) 씨의 이야기. 영진 씨는 노숙을 한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영진 씨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자고, 사람들이 먹다가 남기고 버린 컵라면, 배달음식 등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힘이 없다. 야간에 취객들이 흘리고 간 신용카드로 자판기에서 캔 커피, 주스 등의 음료수를 여러 개 뽑아서 보관하고 있다가 너무 배가 고프거나 힘이 없을 때 하나씩 마신다. 영진 씨는 동일한 범죄(점유이탈물횡령, 절도 및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으로 2년 전에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 출소한 뒤에도 노숙 생활을 계속했고 2년 전 처벌받았던 범죄와 똑같은 방식으로 바닥에 떨어진 카드를 주워 음료수 자판기에서 여러 개의 캔음료를 뽑아서 마신 죄로 공원 벤치에서 체포되었다.

상현 씨와 영진 씨는 모두 구속되는 것에 별다른 두려움은 없어 보였다. 그들은 몇 개월 또는 1년여 정도의 수형생활을 할 것이고, 출소하면 또 절도를 하거나 취객이 흘린 카드로 자판기 음료수를 뽑아 마실 것이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누범가중 등으로 더 장기의 수형생활을 할 것이고 언젠가는 쪽방에서 공원에서 홀로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홀로 쓸쓸히 그 생을 마감할 것이다.

훔친 물건 팔아 쪽방촌 생활하고
주운 카드로 자판기 음료 마시고
그러다 체포되면 또 교도소로…
검찰·변호사·법원, 일 다 한 걸까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 경찰은 이들을 검거할 것이고, 검찰은 유죄를 입증할 것이며, 국선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취지의 변론을 할 것이고, 법원은 양형기준에 따라 생계형 범죄 감경을 하여 형을 선고할 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맡은바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였고, 그들은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자 이제 그러면 끝인가? 경찰, 검찰, 변호사, 법원은 진정 할 일을 다 한 것인가.

영진 씨는 2년 전에도 필자가 국선변호인이었는데 2년 만에 또 다시 변론을 하게 된 인연이다. 필자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체포한 경찰이 당시 필자가 영진 씨에게 20만 원 영치금을 챙겨준 사실을 기억하고 알려주었다. 불쌍한 마음에 20만 원 영치금 챙겨주었으면 필자는 국선변호인 역할 이상의 선행을 행한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필자의 값싼 호의는 고립과 빈곤 그리고 범죄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티끌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하였다.

경제적 빈곤 상태에 놓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고독사하였다는 소식이 요즘 들어 더욱 많이 들려온다. 적어도 사법시스템에 포착된 ‘생존에 필수적인 최소 수준의 조건이 결여된 절대적 박탈 상태’에 놓인 고립된 경제적 극빈층에게는 출소할 때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무부와 관련 부처 사이의 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사법부와 행정부가 함께 상현 씨와 영진 씨가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면 어떨까.


정지웅 변호사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Next

관련 법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