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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재판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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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쓰러져 응급수술을 하였다가 이제 어느 정도 회복이 된 의뢰인과 식사를 하였는데, 자신은 정말 운이 좋아 후유증이 적고 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반면 ‘자신과 비슷했던 질환의 다른 환자는 환부도 수술하기 어려운데다, 응급차를 타고 간 병원에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가 외국 출장을 가서 다시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른 병원에서 뒤늦게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자신의 운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많은 소송사건을 수행하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재판에도 운이 따르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지적재산권 소송 사건에는 기존 판례로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쟁점들이 많이 제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쟁점을 다투기 위해 관련 논문과 해외 사례 등을 한참 검토하다 보면 어떨 때는 한 편의 논문을 작성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여 작성한 서면을 재판부가 얼마나 편견 없이 진지하게 살펴봐 주고 고민해주느냐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운으로 여겨질 수 있다.

공판 종결 전에 검사에게 공소사실에 대해 더 이상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으면 무죄 판결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판사가 선고일 당일 갑자기 아무런 변론 기회도 주지 않고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하는 일이 있었던 반면, 유사한 사례에서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를 꼼꼼히 살피고 피고인에게 유리할 수 있는 쟁점까지 친절히 석명을 해주는 판사에게 감동한 일도 있었으니 만약 같은 당사자가 두 사건을 모두 경험하였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기도 하다.


환자는 의사를 잘 만나야 하듯
의뢰인은 변호사를 잘 만나야
재판도 운이 따르는 경우 있어
그래서 변호사는 ‘진인사대천명’


한편 1심에서 손쉽게 승소를 하여 항소심에서도 상대방의 적극적인 공세에 대해 1심 판결과 같은 결과를 기대하고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였는데, 결국 패소하여 법적으로 난처하게 된 의뢰인이 억울함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패소 사건을 수행한 변호사를 재판 내내 만나기가 어려웠다고 불만을 제기하였는데, 당사자들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정에 가본 적이 없었다는 말을 듣고 보니 1심의 승소판결이 이들에게 독이 되었던 것 같아 보였다.


소송 중에 조정을 통해 충분히 원만하게 분쟁 해결을 할 수 있는 사안임에도 (상대방도 아닌) 소송대리인이 무리한 요구를 고집하여 조정의 여지가 없게 되거나 재판부 또는 조정위원이 형식적인 조정절차만 진행하여 조정 불성립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재판에서 오고 간 당사자의 주장만 보면 도저히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사건에서 재판부의 적극적이면서 중립적인 중재와 소송대리인들의 합리적인 협상을 통해 극적으로 조정이 성립된 경우도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재판부와 상대방 대리인의 조합이 당사자에게는 운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런 일을 보면 당사자(의뢰인)에게 첫 번째 운은 변호사를 잘 만나는 것이고 그 다음엔 재판부를 잘 만나는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변호사의 최선’과 ‘판사의 최선’이 합해져야 비로소 당사자가 원하는 재판결과에다다를 수 있으니 변호사로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조정욱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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