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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놉티콘

[권석천의 시놉티콘] 우영우의 이상한 물음 “법이면 다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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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TV 드라마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처럼 법조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온 적은 없었던 듯합니다. 검찰 조직부터 대형로펌,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배신과 음모의 플롯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한쪽엔 거악(巨惡)이, 다른 한쪽엔 정의의 사도가 있지요.

저는 이 일련의 드라마들이 한국 사회의 어떤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보십시오. 법이 스펙터클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을.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사법농단, 조국 사태에 이어 문재인정부 수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총칼 들고 싸우는 전쟁이 아닌 이상 누군가를 통쾌하게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수사와 재판만한 것이 없습니다. 법률가들은-적어도 대중의 눈에는-콜로세움의 검투사가 돼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매우 이상한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이 법정 드라마는 신기하게도 거대한 흑막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일상이 어떠한 지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어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지를 말하려 합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우영우’의 매회마다 다양한 삶들과 그 안의 마음들이 드러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치매 남편에게 커튼을 쳐주는 아내의 마음,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형을 살리고 싶은 동생의 마음, 마을을 지키려는 동네사람들의 마음…. 법정 안에도 “돈 앞에 간사해지는” 마음, “소송만을 이기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고 싶은 것이냐”고 항의하는 마음이 넘실거립니다. 아, 재판부의 마음도 있네요.


 

‘우영우 신드롬’은 법 만능주의에
우리가 질려 있다는 신호일 수도
스스로에 갇혀 있는 건 누구인가


우영우는 마음과 마음이 모이고, 마음과 마음이 부딪혀서 이 세상을 만든다는 걸 배워갑니다. 그를 '암기천재'라고 불러선 안 됩니다. 감정 주고 받는데 서투를 뿐, 다른 이의 마음에 늘 진심인 마음의 천재입니다. 시니어 변호사 정명석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째서 우영우의 돌출 행동에 페널티를 주지 않느냐는 변호사 권민우에게 정명석은 이렇게 답합니다. “의견이 안 맞고 문제가 생기면 서로 얘기해서 풀고 해결을 해야죠. 매사에 잘잘못 가려서 상 주고 벌 주고. 난 그렇게 일 안 합니다.”

그렇습니다. 매사에 잘잘못 가려서 페널티 준다고 사람이 바뀔 리 없습니다. 법은 최후의 수단일지언정 최선의 수단일 수는 없으니까요. 사람들의 마음이 마주서서 공감할 때 세상이 달라집니다. 한발 더 나아가볼까요? 입법으로 단숨에 개혁하겠다는 것도, 형법으로 ‘공정’을 앞당기겠다는 것도 ‘법이면 다 된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요.

법을 고치지 않고 어떻게 사회가 바뀌느냐고요? 범죄를 저질렀으면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요? 네. 맞습니다. 법은 중요합니다. 다만, 세상이 정말로 달라지려면 정치의 복원과 인식의 변화 같은 것들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동일한 잘못을 또다시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적법절차에 따른 수사와 당사자들의 반성, 사회적 각성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법을 더욱더 원칙에 맞게, 소중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말하는 법치주의입니다.

2022년 여름의 ‘우영우 신드롬’은 그만큼 우리가 법 만능주의에 질려 있다는 신호인지 모릅니다. ‘우영우’는 한국의 법률가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법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법으로 안 되는 것도 있음을 받아들일 때 법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스스로에게 갇혀 있는 건 혹시 당신들 아닌가요?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가 아니고.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