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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법창] 그대의 찬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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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미국 시민권자들이나 영주권자들의 재산 문제나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많이 하다보니 한국 변호사치고는 미국에 출장 갈 일이 많은 편이다. 일도 일이지만 워낙에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아무리 바빠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시간을 빼서 그 지역의 대표 미술관과 콘서트홀은 꼭 방문하려고 한다. 몇 년 전 LA로 출장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마침 LA 오페라하우스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공연하고 있었다. 출장 마지막 날을 할애하여 홀로 공연을 보러갔다(같이 동행했던 동료 변호사는, 오페라는 재미없다며 따로 즐길 거리를 찾아 떠났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역시 클래식 공연장에는 보통 연인끼리 오거나, 여자들끼리 또는 여자 혼자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남자들끼리 오거나 남자 혼자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혼자 공연장에 가는 경우에는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을지 궁금함과 동시에 약간의 설렘이 있다. 특히 외국에서는 그 낯선 느낌과 어우러져서 좀 더 흥분되는 경향이 있다. 이 날 역시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내 왼편에는 이미 중년의 커플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딱 한자리가 비어 있었다. 속으로 ‘빙고’를 외치며 앉아 있는데, 저쪽에서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Oh, no! 설마 이건 아니야’. 그러나 8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그 노신사가 내 오른쪽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이제부터 오롯이 오페라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체념어린 안도감이 밀어닥쳤다.

가난한 시인인 로돌포는 파리의 허름한 주택 다락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그 아래층에는 폐렴을 앓고 있는 젊은 여성 미미가 살고 있다. 어느날 미미는 로돌포가 살고 있는 다락방에 촛불을 들고 찾아온다. 어두운 다락방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그 열쇠를 찾기 위해 서로 손을 더듬다가 로돌포가 미미의 차가운 손을 잡게 된다. 이때 흘러나오는 노래가 유명한 테너 아리아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파극 오페라가 그렇듯 이 오페라 역시 마지막에 미미가 비극적으로 죽으면서 막을 내린다.

미미가 쓰러지면서 장엄하고 비극적인 음악이 오페라하우스 전체를 휘감자 갑자기 내 옆자리 노신사가 눈물을 훔치며 내 손을 잡는 것이 아닌가? ‘아 손이 차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차마 뿌리치지는 못했다. 노인 왈 “이 오페라를 100번은 본 것 같은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구려”. 아마도 먼저 떠나간 아내 생각이 난 것이 아닐까? 나는 ‘노인의 찬 손’을 꼭 붙잡아주었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동양 남자와 백인 노인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었으리라.

 

 

김상훈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트리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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