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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창

[미술의 창] “너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거야” - 마티스의 좌절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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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와 실랑이 끝에 파리에서 1년만 미술 공부를 하기로 허락을 받았다. 마티스는 곧바로 파리국립미술대학에서 가장 유명한 부거호우(William-Adolph Bouguereau) 교수를 찾아갔다.


당시 부거호우는 화가가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작품값이 가장 비싼 화가 중 한명이었다. 대학 내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다. 화가로 데뷔하려면 공식 살롱에서 전시를 해야 했는데, 전시 작품을 뽑는 결정권이 그에게 있었다. 그에게 인정받는 것은 화가로서 성공하는데 첫걸음이었다.


부거호우는 천재적인 기술과 능력을 지닌 화가였다. 그는 여성 신체의 아름다운 곡선, 천진난만한 어린이, 통통하고 귀여운 큐피드 같은 소재를 좋아했다. 모델 여성의 특징을 극도로 미화하면서도 실제 모습을 오묘하게 살리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포토샵을 거쳐 뽀얗고 맑게 예뻐진 셀카 이미지 같이 ‘닮지 않은 듯 하면서도 닮은 모습’을 만들어내는 대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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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거호우, ‘밤(La Nuit)’, 1883년, 유화>

 

마티스는 늦게 그림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미대생들이 이미 터득한 기본적인 테크닉조차 구사하지 못하는 열등생이었다. 부거호우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 수준의 테크닉은 ‘넘사벽’이었다. 부거호우는 마티스에게 “너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거다”라고까지 했다. 마티스는 절망했다. 부거호우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당대 유명 화가로부터 절망적 말 듣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 

새로운 길 모색


마티스는 절망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는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대가들의 그림을 자세히 보며 따라서 그려 보기도 했다. 마티스에게 가장 큰 공부는 틈틈이 파리 밖으로 나가 야생의 풍경을 눈으로 흡수하며 그림을 그린 경험이었다. 마티스가 찾아 갔던 벨일엉메르, 코르시카, 생트로페, 콜리우르 등의 풍경은 파리와 달리 빛에 흠뻑 물들어 있었다. 풍성한 햇빛으로 염색된 듯한 자연의 향연은 마티스의 시감(視感)을 자극했다. 마티스는 그동안 색을 섞어 튀지 않게 완화시킨 회색조의 그림을 그리던 파리의 조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햇빛은 그 조류를 따르던 남아있던 집착마저 무장해제시켰다. 그는 마침내 섞지 않은 순수색으로 그린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 첫 작품이 ‘모자를 쓴 여인(The Woman in a Hat)’이다. 이 때를 분수령으로 마티스는 새로운 그림 문법을 선도하는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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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Woman in a Hat)', 1905년, 유화>

 

인생의 만년에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마티스는 “자유란 자신의 재능이 이끄는 길을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티스의 예술적 담대함은 실패할 게 뻔한데도 계속 도전하는 시지프스적 분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불가능의 절벽을 피해 자신의 능력이 받쳐주는 방법을 찾는데서 태어났다. 마티스의 창조는 남들이 앞서 이룬 성공의 성곽 앞에 초라하게 서있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동시에 이 절망을 자신이 하고 싶고 또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거기에 집중하면서 성공으로 전환시켰다.


파리 교외 야생의 풍경을 눈으로 흡수
햇빛에 염색된 자연을 순수색으로 전환
 


부거호우도 대단히 성공한 화가이다. 그렇지만 마티스가 부거호우를 따라했다면 우리는 지금 마티스를 알지 못할 것이다. 부거호우를 회피하고 자신의 길을 찾았기 때문에 마티스는 미술사에 거인으로 남아 있다.

 

 

케이트 림 아트플랫폼아시아(AP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