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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논단

언어의 혼란과 법치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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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추상적인 정의 규범의 집합이라 할 수 있는데 언젠가부터 수사 기소권 분리, 검수완박, 수사개시권·진행권·종결권, 경찰 독립 같은 낯선 개념들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시선이 머무는 곳은 동일하지만 법률가들조차 전혀 다른 해석을 내어놓으니 일반 시민의 혼란스러움은 커져만 간다. 최근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방안을 놓고도 일부에서는 민정수석실 폐지에 따른 정상화 조치라 하고, 일부에서는 경찰의 정치적 예속을 심화시켜 과거 치안본부 체제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집단적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을 지낸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은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법과 제도의 논의에 있어 진실과 사실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정책과 사안에 대해 논쟁할 수 있고 논쟁을 해야 하지만 공통된 사실에 기초하기보다 분열을 일으키는 수사와 감정에 호소하려는 분위기가 날로 심화되어 가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논쟁이 지나치면 진실은 사라진다. 편견에 호소해 만 명을 움직이는 것이 논리로 한 명을 설득하는 것보다 더 빠른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오늘날 법치주의를 둘러싼 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회 속에서 개인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인 ‘공통의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깨진 탓이다. 신뢰는 지식의 문제이자 윤리의 문제다. 법치주의가 정착되려면 법과 제도가 정당하고 권위를 갖추었다고 인식되어야 하고,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힘 있는 권력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혁의 추진과정에서 법적 개념과 제도의 이해를 둘러싼 혼란이 심화되고 정치적 진영 논리까지 맞물리다 보니 법치주의 확립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법과 제도 논의에 진실과 사실은 중요
논쟁이 지나치면 진실은 사라져
손상된 법치주의 회복이 시대적 과제
혼란스러운 언어부터 바로 잡아야


존 르 카레는 “언어가 분명하지 않으면 진실의 기준이란 없다”고 했다. 법과 제도에 있어서의 언어의 혼란과 사실 왜곡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우리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사법경찰이란 용어는 1895년 제정된 재판소구성법에서부터 사용되었는데 ‘사법’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수사절차가 사법 작용이고 수사권의 본질이 사법권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헌법재판소조차 ‘준사법기관’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독립행정기관’으로 전제하고 합헌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진실은 우리 민주주의의 주춧돌이다. 어떤 것이 사실인지보다 ‘그것을 믿는 게 편리한지’에 관심을 두는 이성의 쇠퇴와 몰락의 시대가 되었지만 그럴수록 진실과 정의의 추구를 사명으로 하는 법률가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법치국가의 작동 여부와 사법의 질은 좋은 국가를 위한 핵심 요소다. 법치의 부재는 부패를 초래하고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먹이사슬 구조가 형성되어 정직한 사람들이 항상 패배하는 구조가 되고 만다.

윈스턴 처칠은 “법치주의의 확립 없이는 문명은 지속되지 못할 것이고, 자유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평화는 지켜지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이성과 진실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진실에 모든 길을 열어 놓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법과 견제-균형 시스템에 의해 권력을 억제하고 규제하는 복합적인 제도다. 심각하게 손상된 법치주의의 회복이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그 첫걸음은 이성의 힘으로 법과 제도의 혼란스러운 언어부터 바로잡는 것이 되어야 한다.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