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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의 회고록

[송종의 회고록] 밤나무 검사의 자화상 (8-1)

2부 가필(加筆) ⑧ 시절을 잘못 만난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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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떳떳해야 검사가 떳떳하다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 - Ⅰ

(1982. 08. 16. ~ 1985. 03. 11.)

  

당시는 검사 직급이 있어 법무부 법무과장도 본청 부장검사와 같은 고등검찰관으로 겸직 발령받아 흔히 부장검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긴 했으나 이는 통칭에 불과했다. 나는 서울지검에서 특수 제3부장 1년, 제1부장 1년 7개월, 총 2년 7개월간 근무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는 3개부로, 모두 제3차장검사 소관이었다. 그러나 실제 가동되던 건 1,3부 2개였다. 2부는 직제에만 있을 뿐, 오래전부터 청와대 등으로 파견나간 검사들의 보직 관리를 위해 운영됐던 속칭 ‘유령부’였다.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 일선 수사에서 멀어져 오직 소속 검사를 지휘할 책임만 있었다. 그러나 특수부장의 경우 통상의 사건 결재와 지도에 그치지 않고, 사건기록에 이름만 없을 뿐 사실상 주임 검사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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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인 법무부 장관(왼쪽)에게 보고하는 당시 송종의 서울지검 특수제3부장

 

특수1부는 검사장 특명에 따라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사건을 처리해 소위 생색나는 건은 거의 드물었다. 당시 사무국 수사과가 특수 1부 소속으로 10여 명 수사관을 포함해 40명 가까운 검찰 일반직이 모두 특수1부장 지휘 하에 있었다. 이에 다른 특수부에서 수사과 직원을 활용하려면 1부장 허락이 필요했다. 불문율로 여겨지던 관행이었다.


내가 특수3부장으로 발령됐을 때, 단발성 범죄 정보에 따라 처리하는 사건보다 소위 기획수사를 해보자는 게 내 나름의 결심이었다. 특수부는 국가나 사회의 고질적인 비리를 밝혀내 부조리를 척결하는 기획수사가 더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이 상습무고사범과 위증사범의 단속이다. 이 범죄의 통계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단연 1등이다.


검사들은 무고, 위증과 같이 ‘거짓’사건 1건이 보통 형사사건 수 십건을 처리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당시 형사부 검사들은 폭주하는 고소·고발 사건에 매달려 귀중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단기간에 100여회가 넘는 고소장과 진정서를 제출하는 사람까지 발견될 정도였다. 공판과정에서 위증으로 무죄가 선고되어도 시간에 쫓기다보니 제대로 된 처벌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풍조를 바로잡기 위해 무고사범 단속 수사에 착수했다. 이미 종결된 수백 건의 사건 기록을 들춰내 범죄 혐의 유무를 다시 가려야하는 고난도 작업이었다. 특수3부 소속 검사들이 범죄정보 수집을 위해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 들어앉아 냄새나는 폐기 직전의 기록만을 살펴보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검사들의 이런 끈질긴 노력으로 이미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던 무고사범이 드러났다. 대대적인 단속으로 무고사범은 13명을 구속하고,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위증사범은 20명을 구속하고,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나의 착상 자체가 극히 황당한 것이었으나 소속 검사들의 집념에 찬 노력으로 이런 많은 사례를 찾아냈다.


이 사건 뒤에 전국에 걸쳐 무고와 위증사범 단속이 뒤따랐다. 기획수사를 매듭지은 다음 법조 출입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사건 보도자료가 법조 출입 기자의 취재와 보도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사건 주임 검사가 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기사는대부분 ‘서울지검 특별수사 제3부 ○○○ 검사는’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이번 기획수사는 특별수사부 소속 모든 검사가 참여해 벌인 수사로 사건의 기소 검사도 모두 달라 검사 한 사람의 이름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소속 검사 전원의 이름을 쓸 수도 없었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수사 책임자를 명시해야한다는 기자들의 주문에 나는 “수사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부장검사”라며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서울지방검찰청 특별수사 제3부(부장검사 송종의)’- 그 이후 특수부 발표 보도자료에는 사건의 대소를 막론하고 주임 검사의 이름 없이 오직 ‘특별수사 제○부’라는 내용의 기사가 송출된 역사적인 내력이 위와 같다.


특별수사의 경우 공소장에 이름이 남는 검사 외에도 여러 명이 힘을 합쳐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 검사들뿐만이 아니다. 여러 명의 수사과 수사관들이 참여하여 벌이는 수사가 대부분이다. 검사 한 사람만의 이름을 들먹일 일이 아니다. 특정 검사의 이름만 쓰면 검사의 공명심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있다.


요즘의 검찰 기사를 보면 특수부의 명칭이나 소속 지방검찰청의 이름조차 생략된 채 ‘검찰은’이란 주어 표시만 있는 기사도 많다. 검찰총장이 책임지라는 뜻에서 그런 표현을 했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대통령특별지시로 ‘호텔 민원’ 수사 착수
공무원들 직·간접 빌미로 경영인 괴롭혀

내사 지시받은 정보기관원도 관련 밝혀
모두 보고하면 뒤처리가 더 어려워져

유형별 시차 두고 기소, 관련기관 통보


제5공화국 정통성 시비로 혼란한 시기

‘대학입시부정’ 본격 수사 전 상부에 보고
“지금 수사 발표하면 혼란 가중” 신중론에

내사 종결로 하되 개선책 촉구하기로 결론
YS정부 때 입시부정 대대적 수사로 성과


다음은 대통령 특별 지시로 이뤄진 기획수사를 적어본다.


특수1부장 재임 당시 사건으로 ‘서울지방검찰사’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두 곳의 호텔에 관한 수사였다. 당시 대통령은 호텔 경영자인 지인으로부터 수많은 공무원들이 호텔을 괴롭힌다는 말을 듣고 군 정보기관장과 국가안전기획부에 각각 사실 여부 조사를 지시했지만 이렇다 할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세 번째로 검찰에 대통령의 진상규명 지시가 하달됐다. 다만 제보자를 조사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다. 국가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이 대통령 신임 순서는 세 번째라는 걸 알게 됐고, 특수부의 활약이 절실했다.


특수 1,3부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수사 대상을 강북과 강남의 호텔 한 개씩으로 정해 본격적인 내사에 착수했다. 어느 정도 비위 사실이 드러난 강북의 호텔은 특수3부에 맡기고, 속칭 ‘맨땅에 헤딩’하는 강남의 한 호텔은 특수1부가 맡기로 사건을 분담했다.


어느 정도의 범죄 단서를 찾아낸 다음 디데이를 정해 일제히 수사에 착수했다.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하면서 증거를 수집해 본 결과다. 호텔이란 곳은 3차 산업의 종합 메카로, 관련 없는 관공서가 없었다. 시청·구청·경찰서 등 관할행정기관은 물론 국세청·관세청 등 여러 부처 공무원들이 직·간접적으로 빌미를 잡아 드나들며 괴롭힌 것이 드러났다. 심지어는 대통령이 내사를 지시했던 두 곳의 정보기관원들까지 이 호텔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각종 명목으로 편의를 제공받고 있었음을 밝혀냈다. 사정이 이러하니 군 정보당국과 국가안전기획부가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을 규명하고 보니, 수십 명이나 되는 많은 공무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큰 고민이 생겼다. 대통령 특명사건이므로 이를 숨길 수도 없고, 모두 보고한다면 뒤처리가 매우 어려웠으므로 우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수사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해 상부에 보고했다.


얼마 후 대검 고위 간부와 나는 청와대 요청에 따라 담당 수석비서관을 방문했다. 이미 두 차례나 대통령께 이상 없다고 보고한 그로서는 난감한 표정으로 검찰이 마땅한 방법을 찾아달라고 통사정했다. 궁리 끝에 이 사건을 여러 개로 쪼개 각 유형별로 범죄의 정황이 중한 사람 몇 명을 대표자로 여러 개의 사건으로 만들어 시차를 두고 기소했다. 나머지 경미한 사람들의 경우 모두 소속기관이나 관계기관에 통보해 소리 없이 끝내는 수밖에 없었다. 몇몇 단발적 성격의 사건 기록은 ‘서울지방검찰사’에도 기록되었다.


특수부장 시절 범죄 혐의를 밝혀냈으나 사건화하지 못한 두 개의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대학 입시 부정 사건이다. 대학 입시 부정 혐의에 대한 내사 보고를 시작으로 상당한 내용의 입시 부정에 관한 정보가 구체화되며 본격 수사를 앞둔 때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교육 풍토를 쇄신하고 싶었던 소박한 욕심으로 상부에 보고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좀 더 신중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제5공화국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정통성 시비에 휘말려 각종 반정부 세력의 정권 규탄 움직임이 격화되기 시작한 때로, 입시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진다면 온 나라가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상부 보고 얼마 후 검사장실에 불려 간 내게 검사장은 내사로 종결하되 이미 드러난 구조적 문제점을 교육 당국에 통보해 자체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하자고 했다. 지금까지 이 결론에 대해 불만은 없다. 수사만이 능사가 아니라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도록 하는 것 또한 검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나는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서울지검 형사 제3부에서 대학 입시 부정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해 큰 성과를 거뒀다. 이 정권이야말로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된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였으므로 정권의 정통성 시비나 정권 자체에 어떤 부담을 줄 가능성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이 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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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수 전 법제처장
(무고·위증 기획수사 당시 3차장 검사)

 

두 번째는 법원 직원의 비리 사건이다.


법조 비리 단속은 특수부의 단골 메뉴였다. 때론 단속 중 법원 공무원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내용이 더러 드러나 이미 축적 자료가 상당했다. 때마침 브로커를 단속하며 입수한 자료가 여러 건 있었는데, 법원 직원의 비리가 상당히 많이 발견됐다. 법원 직원의 비리 혐의가 워낙 자세한 데다 그간 입수됐던 자료를 취합해 정리해보니 많은 법원 직원이 연루돼있음을 알게 됐다. 그 중엔 상당한 대가성이 있다고 볼 만한 큰 돈이 거래된 사실도 있어 수사를 벌인다면 큰 파문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우리 검찰은 오래전 판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사법파동이 초래됐던 불행한 경험이 있었다. 이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법관도 검찰에 출두해야 하는 사태가 예견됐다. 잘못하다가는 80년대에 들어와 제2차 사법파동이 야기될 위험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장은 나를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송 부장은 참 불행한 시절의 특수부장이요. 우리 검찰이 이 수사를 벌인다면 중도에 주저앉을 수도 있는 일이고, 수사하다 보면 지난번 사법파동과 비슷한 사태가 또 벌어질 게 아니겠소?”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내사 결과와 모든 자료를 근거로 작성된 보고서는 인편으로 극비리에 대법원장에게 직접 전달됐다. 그 뒤 어떤 후속 조치가 이뤄졌는지는 모른다.(계속)


<정리=박솔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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